가족과 함께 모처럼 서울의 비원을 찾았다. 안내원은 정해진 코스를 따라 관람객을 인솔했지만 구경한 것은 오직 건물 뿐이었다. 비원의 상당 부분이 수목보호지역으로 지정돼 있어 일부만 관람이 허용되며 건물마다 중요한 문화재가 소장돼 있어 도난이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관람객을 통제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뙤약볕 아래 갓난아이를 데리고 안내원을 따라다니다가 구경을 포기하고 말았다.
더운 여름에 고궁을 찾는 사람들이 문화재를 손상할 잠재적인 용의자라기보다는 문화유산에 관심을 갖고 아끼는 사람들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영문도 모르고 문화재를 훼손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받아가며 안내원을 따라다녀야 하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 아니었다.
전성표(울산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