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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저]윈드서핑 마니아 김명환씨

입력 | 2000-08-14 18:46:00


"이제 윈드서핑은 제 인생이 돼버렸어요.”

79년 한국에 첫 선을 보인 윈드서핑에 매료돼 지금까지 틈나는 대로 한강변으로 달려가는 김명환씨(46·서울 강서구 공항동).

그에게 취미생활이었던 윈드서핑은 이제 그의 인생 전부가 돼버렸다. 친구들과 함께 양평 양수리에 놀러가 처음 본 윈드서핑은 환상 그 자체였다.

고교시절부터 축구 승마 조정 골프까지 안해본 운동이 없을 정도의 스포츠맨이었지만 처음 윈드서핑을 접한 기분은 다른 스포츠를 대했을 때와 달랐다.

“물과 바람에 몸을 맡겨보니 내가 사람이 아니라 마치 새나 물고기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러나 그가 매료됐던 윈드서핑을 배우는데는 어려움이 뒤따랐다.

윈드서핑 도입 초기여서인지 제대로 가르쳐 줄 만한 사람도, 교본도 없어 스스로 깨우쳐야 했기 때문이다.

항공사 승무원이었던 그는 해외를 돌아다니며 윈드서핑 전문가를 찾아다녔고 장비와 서적을 조금씩 모으기 시작했다. 이같은 노력 덕분에 이제 그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전문가가 됐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기 위해 97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다. ‘놀이’에 불과한 윈드서핑에 모든 것을 걸겠다니 아내와 부모가 가만있지 않았던 것.

하지만 자연과 하나되는 윈드서핑에 마음을 빼앗긴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후 그는 매일 서핑 보드를 옆에 끼고 윈드서핑 즐기기와 윈드서핑협회 일(사무총장)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강변에서 윈드서핑을 즐기면서 겪었던 일도 숱하다. 88올림픽 때는 한강변을 정비한다는 이유로 윈드서핑 동호회 컨테이너가 철거되기도 했고, 낚시에 방해가 된다고 항의하는 낚시꾼들과 다툼도 많이 했다. 그래도 88올림픽 때 한강변에서 윈드서핑 퍼레이드를 진행하면서 저변인구가 대폭 늘어난 게 다행.

요즘은 동호인이 급속도로 늘어나다 보니 협회 일거리가 폭주, 물가로 자주 달려가지 못하는 게 아쉽다. 그는 가족이 자연 속에 묻혀 함께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 외에 좀더 큰 욕심이 있다.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해양에 대한 관심도가 너무 낮아요. 앞으로 ‘Marin College’ 같은 교육기관을 만들어 한국에서도 수상 레포츠가 활짝 꽃피도록 남은 인생을 걸고 싶습니다.”

arg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