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년간 미국을 ‘태평성대’로 이끈 빌 클린턴 대통령은 당당했다. 그를 환영하는 민주당원들의 얼굴에도 자부심이 넘쳤다.
‘사상 최장기 호황’ ‘30년만의 최저 실업률’ ‘일자리 2200만개 창출’ ‘사상 최고의 주택보유율’….
14일 오후 7시55분 민주당 전당대회장인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 센터에 도착한 클린턴 대통령이 좁고 구불구불한 복도를 홀로 걸어 대회장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형 스크린에는 그가 임기 중 이룩한 업적들이 하나씩 하나씩 자막으로 떴다. 이를 보고 환호하던 대의원과 당원들은 만면에 웃음을 띤 클린턴이 손을 흔들며대회장에 입장하는 순간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서 우레와 같은 열렬한 박수와 환성으로 맞았다.
▼"고어는 번영 지속시킬 것"▼
“나는 오늘밤 여러분들에게 무엇보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제게 국가에 봉사할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내 힐러리와 딸 첼시에게 잘 해주신 것도 감사드립니다.”
이번 전당대회가 앨 고어 부통령을 새로운 세기의 첫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는 자리임을잠시 언급한 클린턴 대통령은 곧 자신의 임기를 회고하기 시작했다.
“8년전의 미국은 지금과 달랐습니다. 경제는 침체됐고 사회는 분열됐으며 정치체제는 마비돼 있었습니다. 실업자는 1000만명이나 됐습니다.고 이자율은 높았습니다. 공화당 12년 집권 동안4배나 늘어 2900억 달러로 증가한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는 경제에 무거운 짐이 되고 있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이 집권초 어려운 상황을 회고하며 이를 극적으로 반전시킨 민주당 정권의 업적을 열거하자 청중은 열광했다. 그는 부자가 많은 공화당을 겨냥, “공화당원처럼 살고 싶으면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하라”는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해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어 고어 부통령을 ‘강력한 지도자’라고 치켜세운 뒤 미국이 현재 누리고 있는 번영을 지속하려면 11월 대선에서 고어를 대통령으로 선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하는 부인 힐러리의 어린이와 의료문제에 대한 높은 관심에 대해 언급하며 “힐러리는 언제나 뉴욕과 미국의 가정 편에 서 있을 것”이라고 지원사격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어 “54년전 나는 폭풍 속에 남부 시골에서 태어났고 미국은 내게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줬다”고 회상한 뒤 팝 그룹 플리트 우드 맥의 노래에 나오는 ‘끊임없이 내일을 생각하세요(Don’t stop thinking about tomorrow)’라는 말로 42분간의 연설을 마무리했다.
▼"쌩큐 프레지던트" 열광▼
그리고 감회에 가득찬 표정으로 부인 힐러리와 딸 첼시를 포옹한 뒤 함께 손을 잡고 미국인으로는 이례적으로 허리를 90도 가까이 깊이 숙여 청중에게 인사했다.
그는 임기 중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스캔들과 이에 관한 위증으로 정치에 대한 미국인의 불신을 심화시키는 등 잘못도 적지 않았지만 이날은 아무도 그 점을 언급하지 않았다. 청중은 ‘생큐 빌(고마워요 빌)’ ‘생큐 프레지던트(고마워요 대통령)’를 연호하며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날 준비를 하는 대통령을 뜨겁게 환송했다.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