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존해 계신 줄 잘못 알았다니….”
109세 노모를 만난다는 벅찬 기쁨에 연분홍색 저고리와 자줏빛 치마를 준비하고 어린애처럼 좋아했다가 뒤늦게 사망소식을 듣고 땅을 쳤던 장이윤(張二允·71)씨. 장씨는 평양에서 만난 조카들로부터 어머니 구인현(具仁賢)씨가 62년 3월25일 돌아가셨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가슴이 콱 막혔다.
인민군의 징집을 피하기 위해 친척집으로 피신했다가 대동강을 건넌 뒤 어머니와 헤어졌던 장씨. “어머니…” 란 외마디 말밖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10남매(7남3녀)의 막내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유난했던 장씨는 조카들의 만류에도 통곡을 멈출 수 없었다.
장씨는 큰형 명택씨의 막내인 조카 준석씨(52)에게 “처음 봤을 때 (내) 얼굴 알아봤느냐”며 50년 전 헤어질 때 갓난아기였던 준석씨에 대한 기억을 얘기해주면서 북녘 가족의 소식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나이가 차버린 조카들과 격의 없이 북한담배를 나눠 피우던 장씨는 “비록 어머니는 아니지만 50년 만에 혈육을 만났다”고 애써 자위하며 미소지었다. 그러다가 이젠 영영 만날 수 없는 어머니의 모습을 끝내 지울 수 없었던지 장씨는 그만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