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국어학자 유열씨 만난 딸 인자씨▼
꿈속에서나 불러보던 ‘아버지’.
눈물이 범벅이 된 채 아버지 무릎에다 얼굴을 파묻고 “아버지”를 수없이 불렀다.
15일 오후 북측 상봉단과 남한 가족들의 첫 만남이 이뤄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상봉장. 10살 때 헤어져 60살이 다 돼서야 아버지의 품에 덥석 안긴 유인자(柳仁子·60·부산 연제구 연산4동)씨는 그렇게 목놓아 울었다.
“그래, 네가 내 딸 인자인가. 그동안 고생 많았지.”
“아버지…. 곧바로 내려오신다더니 왜 50년 만에 오셨습니까. 어머니는요. 3명의 동생들은 살아 있습니까.”
51년 1·4후퇴 때 헤어진 아버지 유열(柳烈·82·전 김일성대 교수)씨를 만난 인자씨는 그간의 회한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듯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유씨는 남한의 허웅(許雄)선생에 버금가는 북한 국어학계의 태두.
이 순간 인자씨에겐 또다시 이별을 해야 하는 아픔보다 그동안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버지와 함께 있어 행복하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동안 묵혀 왔던 그리움과 못다 한 얘기도 두 손을 꼭 잡은 부녀(父女)의 만남 앞에서는 사치스러울 뿐이었다.
아버지 유씨는 초로의 모습으로 변한 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네가 이렇게 훌륭하게 자랐구나.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며 돋보기 안경을 벗은 채 눈물을 훔쳤다.
인자씨도 “부모님이 보고싶고 그리울 때면 고이 간직한 부모님 결혼사진을 보고 또 봤어요”라며 그동안의 외로움을 투정하듯 털어놨다.
1·4후퇴 당시 서울에 살던 인자씨는 어머니 정양자(鄭洋子·80)씨가 “아침에 집을 나간 아버지와 함께 곧 뒤따라 내려 갈 테니 외사촌 가족들과 먼저 외갓집으로 피신하라”고 해 혈혈단신 진주로 내려간 것이 가족과의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다. 인자씨는 간호전문학교를 나와 30년간 간호사 생활을 한 뒤 최근 퇴직했으며 남편 임재민씨(62·부산배드민턴협회 전무)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어머니는 17년 전에 고인이 되셨다”는 아버지의 말에 인자씨가 또다시 흐느끼자 이날 상봉장에 함께 온 남편과 고모 경자(80) 문자씨(76)가 “아버지와 동생들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 아니냐”며 달랬다.
날마다 부모와 동생들을 만나는 통일의 날을 간절히 기다렸다는 인자씨는 반쪽 소원이라도 이룬 듯 “아버지라도 통일이 될 그 날까지 오래오래 사셔야 한다”는 말을 다짐받듯 하고 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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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아내 만나 최태현씨▼
‘서울에서 온 남편이 평양의 아내에게 끼워준 금가락지.’
15일 오후 평양 고려호텔에서 있었던 한 장면이다. 남편은 6·25전쟁 때 포로가 돼 북의 아내와 50년 생이별을 해야 했던 최태현(崔泰賢·70·인천 부평구 부평2동)씨고, 아내는 박택용씨(72).
두 사람의 상봉 모습을 TV로 지켜보면서 유독 눈시울이 뜨거웠던 것은 남쪽 아내와 북쪽 아내의 애틋한 사연 때문.
최씨가 평양 아내 박씨와 생이별한 것은 51년 봄. 인민군 입대통지서를 받은 최씨는 일곱 살난 아들과 갓 태어난 딸을 아내에게 맡기고 전쟁터로 나갔다.
최씨는 그 해 9월 강원도 전투에서 국군의 포로가 됐고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거쳐 휴전과 함께 남쪽에 남았다. 그리고 지금의 남쪽 아내와 재혼했다. 재혼은 했지만 그는 언제나 북에 남겨놓고 온 아내와 어린 자식들 생각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고려호텔에서 북쪽 아내를 50년 만에 만난 최씨는 눈물 젖은 손으로 주머니에서 금가락지 한 쌍을 꺼냈다. 그리고는 그 중 하나를 늙고 거칠어진 아내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이거 하나는 당신 주고 하나는 내가 끼려고 가져온 거야….”
최씨가 끼워준 금가락지에는 애틋한 사연이 있어 그를 아는 사람들은 또 한번 눈시울을 붉혀야 했다. 그 반지는 남쪽의 아내가 북녘의 아내를 위해 마련해 준 것이었기 때문.
최씨의 얼굴에는 한없이 고마운 남쪽 아내의 얼굴이 잠시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 신청도 자신은 주저했으나 남쪽의 아내와 아들(38)이 서둘러주었다.
최씨는 상봉 뒤 “북녘의 아내는 그동안 시부모와 아이들에 시동생 넷까지 뒷바라지하느라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그런 아내를 만나러 가는 나에게 금가락지 선물을 챙겨주는 남쪽 아내의 마음이 더 없이 고마울 뿐”이라며 목이 메었다.
최씨는 이날 아내와 아들 외에도 4명의 형제들을 만나 상봉의 기쁨을 배로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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