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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호텔 개별상봉 스케치

입력 | 2000-08-16 17:11:00


개별상봉이 이뤄진 16일 남측 방문단의 숙소에는 가족들이 대화하며 먹을 수 있도록 사과ㆍ포도 등 과일과 신덕샘물, 룡성맥주, 배단물(배주스) 등의 음료가 조촐하게 마련됐다.

이날 오전 10시께부터 하나 둘 고려호텔을 찾기 시작한 북쪽 가족 대부분은 첫날 단체상봉 때와 똑같은 복장으로 남쪽 가족이 묵고 있는 방을 찾아갔다.

분홍색 계열의 비슷한 한복을 입은 할머니 둘은 "옷을 단체로 맞춰 입었느냐"는 질문에 잠시 머뭇거린 뒤 "각자 해 입은 것이지요"라고 대답했다.

이번 상봉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딸을 한꺼번에 만난 이환일(82·경기도 안산시 선부3동)씨는 남한에 있는 현재의 아내가 애지중지하던 자신의 금목걸이를 녹여 만든 금반지 세 개를 북쪽 가족들에게 일일이 끼워주고 난 뒤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가족사진을 찍어보는 감격의 순간을 맞보기도 했다.

아들 응섭(54)씨는 "반갑기는 하지만 다 늙어서 이렇게 만나게 돼서 서럽고 안타까운 점도 많습니다"라면서 "한 조국인 우리가 이제는 통일의 염원을 안고 살아야합니다. 저는 농사꾼이기 때문에 이제 나라의 쌀독을 채우는 조국통일의 역군이 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척추질환 때문에 휠체어에 의지한 채 의사의 여행금지 권고에도 오빠와 사촌동생을 만나러 먼 길을 온 김금자(69·여·서울 강동구 둔촌동)씨는 15일 단체상봉에서 오빠와의 상봉이 이뤄지지 않은 아쉬움으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김씨는 오빠기 살아있는 줄 알고 부푼 가슴에 북한 땅을 찾았으나 막상 고려호텔 상봉장에는 사촌자매 2명만 나왔기 때문이다.

김씨는 15일 실망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오빠 얼굴을 볼까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16일 오전 개별상봉에서 김씨의 숙소인 고려호텔 9층 방에서는 오열이 터져나왔다.

"어떻게 찾아온 길인데 오빠가 죽었다니 흑흑 이를 어쩌나..."

김금자씨는 사촌 여동생으로부터 오빠 어후(73)씨가 2년 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사촌 금녀(65)씨는 "오빠가 오지 않아 언니가 너무 섭섭해 하기에 어제 함흥에 살고 있는 딸에게 전화로 물어봤는데 이미 2년 전에 고혈압으로 사망했다고 해서 우리도 가슴이 아팠다"며 울먹였다.

금자씨는 "오빠를 만난다는 기대 하나로 허리가 찢어질 듯 아픈 것을 참고 휠체어를 타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미 돌아가셨다니 믿을 수가 없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금자씨는 오빠에게 선물하려고 샀던 담배와 넥타이, 시계, 목걸이, 허리띠를 매만지며 "이 세상의 오빠는 이제 어디 가서 찾느냐"며 계속 오빠 어후씨 이름만 반복해 불렀으며 사촌들도 한데 엉켜 울었다.

금자씨는 "나는 이번에 못 올 사람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도와줘서 오게 됐다,너무 염치가 없다"며 가슴을 치며 자책하기도 했다.

이런 금자씨에게 친 여동생의 소식은 더욱 기막힌 것이었다.

뜻하지 않게 친 여동생이 살아있다는 소식은 오빠의 사망에 따른 슬픔에 큰 위안이었다.

그러나 여동생 금복(65)씨가 함흥시 사포구역에 살고 있는데 처녀 때 허리를 다친 것이 악화돼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것이다.

또 여동생이 결혼은 했지만 자궁이 약해 아기를 갖지 못해 두 남매를 입양해 길렀다는 얘기도 금자씨를 착잡하게 했다.

"여동생이라도 만나보고 간다면 맺힌 한이 풀리련만, 나처럼 아파서 누워있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느냐"며 금자씨의 볼에는 끝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평양=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