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온 국어학자 유열(柳烈·82·전 김일성대 교수)씨와 딸 유인자(柳仁子·60)씨 등이 16일 오전 숙소인 서울 쉐라톤 워커힐호텔 1609호에서 나눈 대화록.
유인자〓아버님 잘 주무셨어요.
유열〓그래 잘 잤다. 너희들은 어땠느냐.
유인자〓(아들에게 휴대전화를 걸어 건네주며) 아버지, 손자인 제 아들하고 통화 좀 해 보시겠어요. 부산 동아대의대병원의 내과 레지던트예요. 이름은 임태형(31)이고요.
유열〓여기서 갑자기 어떻게 통화를 하냐.(휴대전화에 대해 잘 모르는 듯)
유인자〓(휴대전화에 대고) 할아버지다. 인사해라.
유열〓그래 내가 할아버지다. 건강하고 훌륭하게 크고 있다고 들었다.
임재민(사위·61)〓(아내를 보며) 아버님한테 태형이 딸 이름 지어달라고 합시다.
유인자〓아, 그게 좋겠군요. 아버지 태형이가 보름 전에 딸을 낳았어요. 아직 이름을 짓지 못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지어 주시면 그대로 할게요.
유열〓그래?…(전화에 대고) 딸을 낳았다고? 축하한다. 그러면 내가 내일 아침까지 네 딸 이름을 지어 놓겠다.(전화 끊음)
유인자〓죽은 첫째 여동생 민자 말고 둘째 여동생 두자는 잘 있나요.
유열〓두자가 아니라 ‘두라’다. 민자까지 합하면 세 번째 딸이기 때문에 딸은 그만두라는 의미로 ‘두라’라고 지었단다. 그리고 나중에 네가 보지 못한 여동생이 한 명 더 태어났다. 그 애는 옛날 순수 조선말로 셋째 딸을 의미하는 ‘미라’라고 지었다. 네 이름을 ‘인자’라고 지은 것은 일제시대였기 때문이지. 사실 나는 사람의 자식으로, 인간다운 자식으로 크라는 의미로 인자(人子)라고 짓고 싶었지만 사람 이름에는 사람 인자를 잘 쓰지 않아 그렇게 지었다. 하지만 의미는 좀 다르다는 것을 알아둬라.
유인자〓아버지 사시는 집은 어때요. 큰가요.
유열〓방이 두 개다. 하나는 침실이고 하나는 서재다. 그러나 네 동생들은 모두 방이 3개인 아파트에 산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