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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살아보니]이산상봉 늘면 통일 보인다

입력 | 2000-08-16 18:51:00


분단국가의 비극은 무엇보다도 분단의 피해자인 수많은 개인들의 비극이다. 요즘 관심의 초점이 되는 사람들이 바로 ‘큰 정치’의 결과로 가족과 생이별한 수십만, 수백만의 이산가족들이다.

▼주민접촉 확대 獨통일에 한몫▼

독일에서도 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인한 분단은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가족과 헤어지는 비극을 가져왔다. 헤어진 가족들은 그때부터 각각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국가인 서독과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동독으로 갈라져 살게 되었다. 독일과 한국이 갖는 이러한 역사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분단은 한국보다는 그래도 견딜 만한 것이었다. 분단된 독일에서는 처음부터 양쪽의 사람들이 어떻게든 활용할 수 있는 연락 창구와 접촉 가능성이 존재했다. 서독과 동독 주민간의 편지연락이 가능했고 전화연락도 끊기지 않았다. 가난했던 동독에서 인기가 있었던 것은 부유한 서독에서 오는 소포들이었다.

얼마 전 한국 신문에서 남한측 이산가족 방문단이 북에 사는 가족에게 어떤 선물을 가져갈지 고민한다는 기사를 보고 부모님과 함께 동독의 친척들에게 보낼 소포를 준비하던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소포는 대부분 잘 전달됐고 소포 속에 들어있던, 동독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초콜릿이나 커피 같은 ‘사치품’은 동독의 친척들에게 기쁜 선물이 됐다.

동서독 주민간의 인간적인 접촉 확대가 1970년대 초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의 ‘동방정책’의 일차 목표였다. 이 정책은 역사적 관점에서 일단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될 수 있다. 70년대 말에는 매년 300만명의 서독인들이 사회주의 국가인 동독을 방문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는 100만명 이상의 동독 주민도 서독을 방문할 수 있게 됐다.

분단 독일의 국민이 처했던 운명을 개선하는 것, 즉 분단을 견딜 수 있을 만하게 만드는 것이 동방정책의 주관심사였다. 이는 인도주의적 동기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개인들간의 접촉을 계속 늘려나가는 것이 양 독일 주민들의 머릿속에 민족통일에 대한 생각을 유지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는 것을 서독은 알고 있었다.

나는 70년대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 속에 깃들여 있는 기본적인 철학과 오늘날 김대중 대통령이 추구하는 ‘햇볕정책’의 근간이 되는 생각간의 뚜렷한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시종일관 끈기 있게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당시 서독 총리도 집요하게 동서독간의 접촉 확대를 위해 노력했다.

100명의 북한 이산가족 방문단의 남한 방문과 남한 방문단의 북한 방문은 의심할 여지 없이 한국 역사의 한 이정표다. 해당 개인들이나 그들의 가족에게는 평생의 꿈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만남은 시작일 뿐이다. 방문단에서 제외된 다른 많은 이산가족들의 고통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그들에게 이번의 선발 과정은 너무나 가혹한 시간이었다.

▼만나다 보면 마음의 벽 무너져▼

남북한 긴장 완화 노력이 얼마나 성공을 거두느냐는 것은 무엇보다도 가까운 미래에 더 많은 이산가족의 만남이 가능해질 것이냐에 달려있다. 사람들간의 접촉을 증가시켜 나가는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늘려나가고자 하는 현 정부의 정책적 노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다. 지금 사람들의 관심은 분단 반세기 만에 헤어져 있었던 가족들을 만나는 선택받은 200명의 양측 이산가족 방문단에 집중돼 있다. 이번에 선택되지 못한, 야만적인 분단의 결과로 가족을 만나는 기초적인 인권으로부터 소외된 나머지 이산가족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로날드 마이나르두스(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 한국사무소 대표)

▼약력▼

로날드 마이나르두스 대표는 1955년 미국에서 태어나 독일 함부르크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공영방송인 도이체벨레 라디오방송 정치경제부장과 그리스 지국장, 독일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 그리스 사무소 대표 등을 지냈고 국제관계 외교정책 등에 관한 저술활동을 해왔다. 1996년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 한국 사무소 대표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