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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상봉]뒤늦은 제사…오영재씨 영정앞 큰절

입력 | 2000-08-16 19:17:00


이산가족 상봉 이틀째인 16일 서울에서 다시 만난 남과 북의 가족들은 50년 동안 기일(忌日)을 몰라 지내지 못했던 부모님 제사를 함께 올리며 ‘핏줄과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아버지 어머니, 둘째 아들이 명복을 빌고자 절을 드리러 왔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 저를 만나기 전에는 절대 돌아가시지 않겠다고 하시더니 왜 먼저 세상을 뜨셨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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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느끼며 추모시 낭송▼

북한의 대표적 서정시인으로 ‘계관시인’칭호를 받고 있는 오영재씨(64)는 16일 오전 쉐라톤 워커힐호텔 객실에서 형 승재씨(67·전 한남대학원장) 등 형제들과 다시 만나 부모님 영전에 사모곡(思母曲)과 술을 올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영재씨는 북한에서 준비해 온 부모의 영정사진이 새겨진 검은 돌을 창가에 올려놓고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으로부터 환갑선물로 받았다는 술잔에 금강산참나무열매술을 따른 뒤 큰절을 올렸다.

오씨는 이 자리에서 ‘무정’ ‘슬픔’ ‘사랑’ 등 어머니를 추모하는 자작시 3편을 형제들의 흐느낌 속에 직접 낭송했다. 이 자작시들은 95년 어머니가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접한 뒤 지은 것.

“차라리 몰랐더라면/차라리 아들이 죽은 줄로 생각해 버리셨다면/속 고통 그리도 크시었으랴/그리워 밤마다 뜬눈으로 새우시어서/꿈마다 대전에서 평양까지 오가시느라 몸이 지쳐서/그래서 더 일찍 가시었습니까/아, 이제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어머니 나의 엄마!/그래서 나는 더 서럽습니다. 곽앵순 엄마!”(‘슬픔’의 일부)

▼호텔방에 제사상▼

다른 호텔방에서도 어머니 제사를 위해 미리 술을 준비해온 북쪽의 형 박상업씨(68)가 남쪽의 동생 상우씨(62)가 가져온 사과 배와 사진으로 제사상을 차려 놓고 58년 세상을 떠난 어머니 제사를 지냈다.

“불효자 큰아들 이제야 절 올립니다, 어머니.”

상업씨는 고운 명주옷을 한 번 입어보고 싶어했던 어머니를 잊지 못해 수 십 년 동안 명주 한 필을 고이 간직해 왔으나 그대로 두고 온 것을 애통해 했다.

김규설씨(66)도 여동생 규숙씨(65)와 남동생 규석씨(59) 등 남쪽의 가족들이 준비한 소주 과일 등을 제수 삼아 어릴 때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80년 숨진 아버지 앞에 ‘약식 제사’를 올렸다.

▼한복 입고 약식제사▼

동생 규석씨로부터 아버지가 80년 음력 2월에 돌아가셨다고 사망날짜를 처음 전해들은 규설씨는 한복을 차려입고 앨범 속의 아버지 사진을 영정 삼아 정중히 절을 올렸다.

“아버님, 제가 어릴 때 어머니께서 돌아가시자 상처의 아픔을 감추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 불효자식을 용서하시고….”

규설씨는 방바닥에 엎드려 아버지와 대화하듯 어린 시절을 떠올리다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min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