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데…. 아닌 것 같은데….’ 남편은 오랫동안 가슴에 그렸던 아내를 첫눈에 알아보지 못한 채 주저주저했다. 그럴 만도 하지 않은가. 강산이 다섯 번이나 변했을 기간 내내 꽃다운 나이의 아내를 그렸던 남편이었다. 이산가족 상봉의 절절한 사연은 끝이 없지만 북쪽의 아내 홍경옥씨(76)와 아들들을 만난 남쪽의 남편 이선행씨(81)의 얘기는 특히 가족과 가정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이선행씨의 남쪽 아내 이송자씨(82)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이미 할아버지가 된 아들 박위석씨(61)를 만나고 있었던 까닭이다.
▷1950년 11월 처와 자식들을 데리고 피란 도중 가족과 헤어졌던 이선행씨와 먼저 월남한 남편을 찾아 서울로 왔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이송자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삭이며 살아오던 두 사람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정으로 1968년 재혼했다. ‘죄인’이라는 생각에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 온 두 사람은 “우리야 자식 버린 부모라는 멍에를 푸는 것이고, 자식들은 부모 찾는 기쁨이겠지…”라면서 방북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각각 북쪽의 가족을 만났다.
▷짧기는 해도 그들이 그리던 가족을 만난 일은 다행한 일이다. 그렇지만 가정의 관점으로 본다면 앞으로의 문제도 차근히 준비해야 될 것이다. 가정의 구성원을 가족이라 할 때 복잡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선행씨의 경우는 이중결혼이 되는 셈인데 남쪽이건 북쪽이건 중혼을 금지하고 있고 중혼 시 한쪽은 취소 또는 무효가 되게 되어 있다. 현행법과 제도로는 해결될 수 없는데 이런 예는 수없이 많을 것이다. 이미 재산이 북쪽의 가족에게도 분배되어야 한다는 이산부부 가족의 송사도 생겼다.
▷그러나 분단이라는 어쩔 수 없는 상태에서 생긴 일들은 결국 사랑과 관용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특별법 제정으로 뒷받침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혼인에 의해 이뤄진 부부는 한 남자와 여자의 평등하고 신성한 결합 관계라는 점에서 한쪽의 가족에게 피해가 가서는 안될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이산가족의 상봉 기회 확대와 수구초심(首邱初心)에 가슴이 타는 사람들의 고향 방문 성사가 시급한 일이다.
dhy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