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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렌츠海는 냉전지대"…러-나토 첩보전 치열

입력 | 2000-08-16 19:36:00


‘바렌츠해(海)는 심해의 냉전 지대.’

러시아 해군의 핵잠수함 쿠르스크호의 침몰을 계기로 바렌츠해가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잠수함이 치열한 첩보전을 펼치고 있는 냉전지대임이 확인됐다.

바렌츠해는 러시아 북서부 해안과 노르웨이 북단 사이의 해역. 러시아 4대 함대 중 하나인 북해함대의 기항 세베로모르스크와 무르만스크가 인근에 있다. 북극해와 북대서양을 관할하는 북해함대는 바다로 나오려면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한다.

쿠르스크호 침몰 후 러시아 군당국은 외국 잠수함과 충돌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사고 당시 쿠르스크호는 북해함대의 훈련에 참가 중이었기 때문에 NATO 잠수함이 근처에서 감시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미국은 “미 해군과는 아무 관계없다”고 말했다. 러시아 전문가들도 “충돌했다면 서방 잠수함도 타격을 입었을 것이지만 어디에서도 그런 흔적이 없다”며 ‘충돌설’에 의문을 나타냈다.

당초 러시아군은 사고가 13일에 있었다고 밝혔다. 미국은 폭발음 탐지 결과를 근거로 사고는 12일에 있었다고 공개했다. 미 해군이 러시아 북해함대의 움직임을 감시해온 사실을 시인한 셈이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 해군력은 3분의 1로 감소했고 작전도 줄었다. 유독 바렌츠해의 긴장이 줄지 않는 이유는 전략적 중요성 때문. 소련이 해체되면서 러시아는 흑해와 발트해의 전략항구를 잃었다. 그만큼 북해함대의 바렌츠해가 중요해져 이곳에 최신잠수함을 배치하는 등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다. 극동함대 소속의 잠수함은 4척인데 비해 북해함대는 7척의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해함대는 현재 예산부족으로 훈련과 정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무리한 작전을 계속해 사고가 잦은 것으로 알려졌다. NATO는 러시아 최신예 함대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해 북해함대를 집중적으로 감시한다. 때로는 상대방 잠수함의 성능을 가늠하기 위해 쫓고 쫓기는 숨가쁜 추격전을 벌인다.

냉전 시절에는 미군 잠수함 한 두 척이 바렌츠해에 상주하면서 북해함대 소속 잠수함의 작전에 대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 잠수함은 상대방 정보를 탐지하거나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충돌할 만큼 바싹 접근하기도 했다.

미국과 러시아 측은 구조작업을 놓고도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새뮤얼 버거 미 안보보좌관은 미 해군을 동원해 구조작업을 돕겠다고 제의했지만 러시아는 거절했다. 이유는 구조장비가 다르다는 것.

하지만 116명의 승무원 목숨보다 최신 군사 장비의 기밀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kimkihy@donga.com

▼승무원 어떻게 구조할까▼

노르웨이 북쪽 바렌츠해에 침몰한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의 승무원을 어떻게 구조할 수 있을까. 영국 BBC방송은 15일 네 가지 방안에 관해 보도했다.

첫째는 ‘콜로콜’이라는 잠수기(器)를 사용하는 것. 해상 구조함에서 로프를 침몰된 잠수함의 탈출구에 연결한 다음 로프에 잠수기를 매달아 엘리베이터처럼 사용하는 방법이다. 한번에 10∼15명을 태울 수 있다. 러시아 해군은 16일 로프를 침몰함에 연결하는 데 성공했으나 해저 해류가 불안정해 아직 구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둘째 구조 방법은 구조용 잠수정을 잠수함에 결합하는 것. 그러나 러시아의 구조용 잠수정이 오랫동안 방치된데다 침몰된 잠수함이 크게 부서진 상태여서 구조 잠수정과 제대로 연결할 수 없다는 비관론이 많다. 또 다른 구조 방법은 탈출구나 어뢰 발사용 해치를 통해 침몰된 잠수함 안에 개인 잠수장비를 넣어 승무원이 이를 사용해 탈출하도록 하는 것. 그러나 잠수함 안에서 갑자기 100m 이상 심해로 빠져나올 때 높은 수압 때문에 폐를 다칠 가능성이 크다.

잠수함을 끌어올릴 수도 있으나 쿠르스크호가 워낙 대형이라 인양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때까지 잠수함 내 산소가 바닥나면 생존 가능성이 희박해 실현 가능성은 적다.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