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일색의 중국,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미국, 통제사회 북한을 넌지시 꼬집는 일본, 심드렁한 러시아.’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세기적 이벤트를 취재하기 위해 16개국 103개 신문방송이 취재경쟁을 벌이는 서울 워커힐호텔 프레스센터. 한반도 주변 4강국의 언론은 연일 안타깝고 가슴뭉클한 뉴스를 보도하면서도 미묘한 시각차이를 드러냈다. 4강국은 한국전쟁의 직간접적인 당사자로서 분단의 비극을 모른 체 할 수 없는 상황.
서울발 휴먼드라마를 가장 열심히 보도하는 곳은 ‘뜻밖에도’ 중국. 국영 CCTV, 인민일보, 중국국제방송, 신화통신 등이 연일 ‘눈물나는 사연’을 쏟아내고 있다.
중국국제방송의 천쥔차이(陳俊才)서울지국장은 16일 “한반도 통일을 희망하는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 부정적 내용은 보도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살얼음판’ 화해 분위기가 깨져서는 안되기 때문에 자극적인 내용은 쓰지 않겠다는 것.
역설적이게도 갑작스러운 화해 분위기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쪽은 미국 언론. 워싱턴포스트는 14일 ‘과거 행적에 비춰볼 때 김정일의 화해 제스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이르다’는 기사를 실었다.
분석 기사로 정평이 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도 눈물 적시는 가족사에 초점을 맞출 뿐 분단의 원인 등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발레리 라이트만 도쿄(東京)지국장은 “50년전 상황을 지금 다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오히려 취재기자에게 북한 방문단이 ‘경애하는 장군님 덕분에…’를 연발하는 상황을 한국언론이 애써 무시하는 점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최대규모인 27개사 219명이 투입된 일본 언론은 북―일수교 가능성을 염두에 둔 듯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흔적이 역력했다. 그러나 16일 주요뉴스에서 북한이 성공한 월북자들을 골라 내려보냈다고 북한 당국의 정치적 계산법을 집중보도, 이번 이벤트의 ‘변질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국전쟁의 막후 당사자인 러시아는 방송 통신 모두 프레스센터에 등록하지 않은 채 간략히 보도했을 뿐이다. 한편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AP TV는 이산의 배경과 관련해 “한국전쟁 등은 냉전시절 수십년간 정치적 수사(修辭)로 왜곡된 만큼 확인된 사실(史實)만 보도할 뿐”이라며 중립적 보도방침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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