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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거장 롤랑 조페의 '깜짝 변신'

입력 | 2000-08-17 18:57:00


‘굿바이 러버’는 세상이 말세라는 말을 증명하는 내용으로 가득찼으면서도 한없이 유쾌한 영화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구성은 잠시라도 눈을 떼면 이야기를 쫓아가기 힘들게 만들 정도로 통통 튀고, 불륜과 패륜으로 가득찬 영화속 인물들은 사악하다기보다 귀엽다 싶을 정도로 생동감이 넘친다.

광고회사 중역인 벤(돈 존슨)은 매력 만점의 독신남에다 독실한 기독교신자다. 뭐하나 부족할 것이 없는 그의 가장 큰 골치덩어리는 알코올중독에 빠져 망나니가 돼버린 동생 제이크(더모트 멀로니)다. 그런 제이크를 항상 감싸주는 벤에게는 하지만 더 큰 고민거리가 숨겨져있다. 바로 그의 정부가 제이크의 아내 산드라(패트리샤 아퀘트)라는 점. 농익은 관능미로 무장한 산드라는 교회에서, 부동산 고객의 빈집에서 남편의 형과 위험한 섹스를 즐긴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벤은 산드라를 멀리하고 같은 회사동료로 순진한 것인지 내숭을 떠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는 페기(메리 루이스 파커)에게 끌린다.

여기까지 영화의 도입부. 그 다음부터 이야기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튄다. 색깔도 무지개빛 총천연색이다. 배신과 음모가 춤추는 비정한 현실을 다뤘다는 점에서 하드보일드고 남자를 파멸로 이끄는 섹시한 요부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보디 히트’류의 팜므 파탈 영화의 전통에도 맥이 닿아있다. 주연급 배우들이 계속 죽어나간다는 점에서는 ‘펄프 픽션’을 닮았고 여자만 노리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섹스스릴러다.

특히 패트리샤 아퀘트가 창조한 콜라같은 악녀 산드라의 캐릭터는 정말 독특하다. 백치같은 얼굴로 소름끼치는 음모를 꾸미는 그녀가 등장할 때마다 흘러나오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삽입곡들은 이율배반적 조화를 이룬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 기발한 영화의 감독이 롤랑 조페라는 점이다. ‘킬링필드’에서 ‘미션’과 ‘시티 오브 조이’까지 장인정신에 투철한 서사적 영화를 만들어온 그의 연출변신은 헤비급 권투선수가 라이트급 선수로 체중을 낮춰서 뛰는 것 같은 현기증을 불러 일으킨다. 그의 현란한 잽솜씨가 과연 과거의 묵직한 스트레이트만큼 파괴적이냐에 대한 평가는 유보하더라도 그 도전정신만은 높이 사고싶다. 18세 이상 관람가. 26일 개봉.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