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호 선수
역사와 마찬가지로 냉혹한 승부의 세계인 스포츠에 만약이란 없다. 패배의 기록이외에는 어떤 이유도 통하지 않는다.
한국유도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불리는 남자 100kg급 장성호(22·한국마사회)는 지난해 이런 사실을 실감했다.
장성호는 유도를 늦게 시작했다. 어릴 때 사고로 인한 왼쪽 팔꿈치 부상으로 덩치만 컸지 힘이라곤 쓸줄 몰랐던 약골체질을 고치기 위해 서울 오주중 2년때 처음 유도에 발을 들여 놓았다. 이어 유도명문 보성고에 진학하며 유도의 맛을 알기 시작한뒤 99년 태극마크를 달기까지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천적과도 같은 일본의 이노우에 고세이를 만나며 장성호는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하게 된다. 자신보다 나이도 한 살 어리고 키도 10cm 가량 작지만 강한 하체를 바탕으로 모든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노우에에게 지난해 파리오픈과 세계선수권 결승에서 잇따라 패하며 패배의 쓴맛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이후 장성호가 집중적으로 연습한 것도 이노우에를 이기기 위한 방법을 찾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에 올들어 기량과 경기운영 능력에서 부쩍 성장한 장성호는 올초 독일오픈 우승으로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했다.
장성호는 84로스앤젤레스올림픽과 96애틀랜타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하형주(95kg급) 전기영(86kg급)이후 등장한 대형 스타. 한국인에게는 쉽지 않은 체급이지만 1m90의 당당한 키를 바탕으로 힘좋고 키 큰 유럽선수들을 단숨에 내다꽂는 실력은 가히 환상적이다.
장성호가 금메달을 자신하는 이유는 최근 들어 기술이 부쩍 늘었기 때문. ‘업어치기의 달인’으로 불렸던 전기영처럼 장성호의 허리기술에 걸려 나가떨어지지 않을 선수가 없을 정도다. 아예 장성호와 맞붙는 선수들은 허리기술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미리 견고한 방어막을 구축하지만 한순간에 매트에 꽂힌뒤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알고서도 당하는 것에 더욱 약이 오른 표정. 충격도 크다. 허리 기술에 걸려 쓰러지면 한동안 일어서질 못한다.
박종학 남자대표팀 감독(청주대 교수)은 “단신에 힘이 좋은 이노우에가 가장 경계해야 할 선수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미 장단점을 파악해 놓았고 지금 정도의 훈련량이라면 승산이 있다”며 “지금 정도의 실력이라면 금메달 유망주로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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