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판 남북상봉극이 한반도에 눈물을 흠뻑 뿌린 뒤 어제로서 막을 내렸다. 이 역사적 공연에는 묘하게도 같은 무늬의 옷감을 입은 여인네들이 많이 등장했다. 서울과 평양 양쪽에서 남측 가족을 만나러 카메라 앞에 나온 북한 할머니들 가운데 여럿이 소위 올챙이무늬 의 청록색 한복을 똑같이 차려 입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이 옷감은 평양을 방문한 외빈들에게도 선물될 정도로 귀하고 값비싼 것이었다.
반세기만의 만남을 위해 남북한은 우선 치장에서부터 꽤 많은 돈을 들여야 했다. 물론 50여년 떨어져 살던 가족이 만나는 데 경제적 부담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부등켜 안고 통곡하는 이산가족들의 모습에 온 민족이 함께 눈시울을 적시던 순간에는 막상 이번 상봉에 들어갔을 많은 돈, 또 그 비용의 부담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할 겨를들이 없었다.
▼상봉의 비용 만만치 않아▼
남북의 상봉가족들이 양쪽을 들고 나는데 탔던 특별기의 항공료는 얼마씩 지불했고 서로 상대지역에서 최고의 서비스로 먹고 자는데 드는 비용은 도대체 누가 계산했는가. 북쪽 사람들이 서울나들이에 정성들여 마련한 선물상자속의 술과 담배는 개인이 부담했을까 아니면 당에서 지급했을까. 평양으로 날아간 이남 가족들이 싸들고 간 선물꾸러미를 준비하는 데 들어간 돈은 얼마나 되며 이들에게 지급된 노자는 어느 정도였을까. 혹 이들의 만남을 엮기 위해 우리 정부가 은밀하게 지출한 자금은 없었을까.
반세기만의 역사적 만남을 앞에 놓고 쫀쫀하게 웬 돈타령이냐고 할지 모른다. 그렇다. 아들 한번 만나보려고 죽기조차 거부 하며 독한 마음으로 살아온 노모에게, 또 그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백발이 되어 찾아온 외아들에게 만남은 그 자체가 삶의 전부이지 돈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가슴 저미도록 고통스러웠던 기다림의 마음을 모독하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앞으로 계속될 전체 이산가족의 상봉을 상정할 때 그런 감상적 파악은 적절하지 않다. 극단적으로 비유할 때 겨우 100명의 서울방문을 위해 이번에 사용된 돈이 직접경비만 35억이라면 같은 비율로 앞으로 1천만 이산가족의 상봉을 계산할 때 양쪽이 지출해야 할 돈은 무려 350조원 이상이다. 우리나라 35년치의 국가예산에 해당되는 천문학적 규모의 돈이다. 물론 처음이니까 그랬겠지만 상봉의 혜택이 이산가족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게 하려면 형식은 바뀌어야 한다.
남쪽이야 이번에는 그래도 기업 등에서 성금형태로 모은 남북협력기금이 있으니까 감당할만 했겠지만 경제가 어려운 북한에게는 얼마나 큰 부담이 됐을까. 남북협력기금이란 것도 사실은 국민적 공감위에 투명하게 집행되어야 할 돈이지 정부가 일부 국민에게 흡사 시혜베풀 듯 일방적으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다음달과 그 다음달에 비슷한 규모의 상호방문이 예고되고 있다. 형평성을 고려한다면 이번 상봉때와 비슷한 수준의 숙식과 그에 따른 비용지출을 예상할 수 있지만 이런 식의 행사는 한번으로 족하다. 정부안에서부터 검소한 만남이 추진되고 있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당연하다. 이번 행사에서 경비문제로 가장 놀래고 고심했을 당사자는 정부였을 테니까.
만남에서 거품을 빼는 1차적 방안은 물론 면회소를 설치하는 것이겠지만 오히려 그에 앞서 여건이 허락하는 대상자를 선정해 어머니가 지어주는 밥을 먹을 수 있도록 가정방문 시범사업부터 우선적으로 실행하면 어떨까.
▼가정방문 서둘러 실행을▼
누추하면 어떤가. 그들은 어차피 우리의 가족이지 손님이 아니지 않은가. 이제는 체면치레를 걷어 치우고 진솔한 삶의 모습을 서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어느 쪽이 어느 정도의 경제수준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지금쯤 양쪽이 서로 알고 있는 것 아닌가.
빈부의 차이는 남북한간에만 있는 게 아니라 남쪽안에서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저 정성으로 맞이하면 되는 것이다. 지나치게 빈한해서 이산가족을 맞을 수 없는 가정은 남북한 양쪽에 모두 존재할 수 있으며 그런 가정에게만 정부가 지원해주면 된다. 만일 경제외적 문제로 가정방문 제도가 머뭇거려진다면 그건 그것대로 양쪽 당국이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가족이 만나기 위해서는 서로 솔직해지는 것이 으뜸이다.
이규민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