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야구는 불평등한 게임이다. 꾸준히 잘하면 소용 없다.
X나게 못하다가도 한순간 불꽃처럼 타오르면 된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때. 누구 얘기냐구?
바로 야구판의 풍운아 현대 투수 임선동 얘기다.
아니, 풍운아가 아니라 행운아다. 무슨 얘기인지 차근차근 풀어보자.
올시즌 초만 해도 임선동의 재기를 믿는 이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현대 투수코치조차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코칭스태프의 의견은 이렇다. “풍선에 바람을 잔뜩 넣었다가 빼 버리면 쭈글쭈글 해진다. 사람 근육도 똑같다.”
임선동은 지난 97년 LG와 법정 투쟁을 거치면서까지 일본 진출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체력훈련을 거의 하지 못했다. 당연히 원래 커다란 덩치는 더욱 커졌고 체중은 110킬로그램까지 나갔다.
이래가지곤 구속이 제대로 나올리 없었다.
LG와의 2년간 계약 동거를 마친뒤 임선동은 현대로 트레이드 됐고 역시 99년 첫해 무지하게 헤맸다. 모두가 혀를 끌끌 찼다.
올 초반도 튼실한 방망이와 행운의 투수 로테이션 덕에 그럭저럭 승을 거두나 했더니 어느새 14승이다.
행운가지고는 도대체 말할 수 없다. 제 실력이 돌아온 걸까.
현대 투수코치의 바람빠진 풍선 이론대로라면 원래의 체격으로 되돌아 왔더라도 구위는 예전만 못해야 한다.
상식을 저버리고 최고의 피칭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임선동이 지난 13일 한화전 완투승을 거뒀는데 마침 다음날엔 시드니올림픽 대표선수 선발이 있었다. 대표팀 선발위원들에게 강한 인상을 줬음은 물론이다. 그전까지는 임선동이 유력후보에 들어있지 않았다.
시즌 초반 다승왕 얘기까지 나오던 삼성 ‘아기사자’ 김진웅은 탈락하고 말았는데 역시 임선동이 그 자리를 차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김진웅은 대표팀 탈락이 확정되자 몹시 침울해 했고 김용희 감독까지 나서서 그를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는 후문이다.
임선동은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야구 꼴찌 추락의 주범이었다.
이번엔 과연 그 불명예를 만회할 수 있을까.
혹, 능구렁이 임선동은 부진한 뒤 이렇게 얘기하는 것 아닐까.
“누가 뽑아 달랬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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