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국보 138호 선죽교
경의선(京義線)이 복원되면 서울에서 개성까지 채 한시간도 걸리지 않는다.북한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말대로 개성시내 버스관광이 이뤄진다면 그곳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개성은 고려 500년 도읍지였다. ‘비가 오면 개성에서 예성강까지 처마 밑으로 비를 맞지 않고 갈 수 있었다’는 말이 전해올 만큼 번창했었다. 개성엔 고려시대의 문화유적들이 즐비하다. 가장 대표적인 문화유적은 개성시 송악동에 있는 고려 왕궁 만월대의 터(북한 국보 122호). 웅장했던 건물들은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돌계단과 건물 주춧돌만 쓸쓸히 남아 있다. 왕궁터는 약 38만평. 만월대의 모형은 개성역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이곳 만월대 터엔 고려 천문관측기구인 첨성대(10세기)가 있다. 이 첨성대는 그 자체가 천문관측기구였던 것이 아니라 관측기구를 올려놓는 받침대 역할을 한 보조기구였다.
또 충절의 상징인 선죽교(개성시 선죽동·북한 국보 138호)를 빼놓을 수 없다. 1392년 정몽주가 이방원 일파에 의해 피를 흘리며 죽어간 곳. 선죽교의 원래 이름은 선지교였다. 그러나 정몽주가 죽고 나서 그 자리에 대나무가 자랐다고 해서 대나무 죽(竹)자를 넣어 선죽교로 불렀다. 선죽교 옆엔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는 표충비(북한 국보 137호)가 서있다.
개성시 부산동에 위치한 성균관. 고려시대 최고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11세기초 처음 세워졌고 11세기말 교육기관 국자감이 이곳으로 옮겨왔다. 이후 1310년 성균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곳에 개성역사박물관이 있다. 도심 한복판인 북안동엔 남대문이 있다. 고려의 수도성인 개성성 내성(內城)의 정문으로, 단정하면서도 장중하다. 1346년에 주조된 연복사종도 이곳에 걸려 있다.
불일사 5층석탑(개성시 내성동 공원·10세기경)과 현화사 7층석탑(개성 부산동 성균관 옆·11세기)은 대표적인 고려 석탑.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현화사 7층석탑은 특히 벽돌로 쌓아올린 듯한 기단부가 이색적이다.
용흥동 영통사터엔 대각국사 의천의 불교적 업적을 새겨놓은 대각국사비가 있다. 영통사는 의천이 출가해 불법을 익힌 사찰. 현재 발굴 중이며 2001년 의천스님의 열반 900주기에 맞춰 일부 유적이 복원될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 고도에 왕릉이 빠질 수 없다. 개풍군 해선리엔 태조왕건릉과 공민왕릉이 있다. 공민왕릉은 공민왕과 부인 노국공주 인덕왕후의 무덤이 나란히 붙어 있다.
조선 성리학자 화담 서경덕, 조선의 명기 황진이와 함께 송도3절의 하나인 박연폭포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박연폭포는 개풍군에 있으며 높이는 약 20m. 박연폭포 용바위엔 황진이가 머리채로 썼다고 하는 글씨를 새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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