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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보 기자의 바둑이야기]세계 최강 여류기사 예내위의 '꿈'

입력 | 2000-08-22 13:47:00


'夢'

세계 최강의 여류기사 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이 최근 합죽선(合竹扇)에 쓴 휘호다.

정상급 기사들이 합죽선이나 바둑판에 휘호를 쓰는 것은 흔한 관례지만 '夢'과 같이 바둑과 관련없는 용어를 쓰는 것은 드문 일.

루이 9단에게 물어봤다.

"'夢'을 무슨 뜻으로 썼나요."

"꿈, 제가 평소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고 한국에 와서 제 바둑의 꿈을 펼쳤다는 의미에서 썼어요."

아직 한국말이 서툰 그녀는 말문이 막힐 때마다 영어를 섞어가며 설명했다.

그녀의 말대로 한국은 그녀에게 '夢'의 땅. 지난해 차민수(車敏洙) 4단의 주선으로 한국에 정착한 뒤 국수전을 비롯해 국내외 모든 여성 기전을 휩쓰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 대국 상금으로 번 돈도 지금까지 1억원에 육박한다.

10여년전 톈안문(天安門) 사태로 중국을 떠난 뒤 한국에 오기 전까지 남편 강주주(江鑄久)와 함께 떠돌이 기사 생활을 했던 것을 감안하면 한국은 그녀에게 '엘도라도'인 셈이다.

루이 9단의 질주는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올 성적은 26승8패(승률 76%)로 상위권. 이 가운데 11일 열린 제2기 여류국수전 결승전 제3국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한국의 신예 조혜연(趙惠連) 2단이 오랜만에 막강 루이 9단을 상대로 한판을 건지면서 1대 1을 만든 상황에서 가진 최종국. 바둑팬들은 조2단에게 '혹시나'하는 기대를 걸었지만 루이 9단은 이날 '역시나' 특유의 완력을 보여주며 113수만에 흑으로 불계승을 거뒀다.

루이 9단은 우승 소감에서 "한국 여성 신예들의 중반 전투력이 매우 뛰어나 초반 감각과 경험만 더 쌓으면 곧 나를 능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루이 9단과 친한 한국 기사들은 루이 9단 특유의 '엄살'이라고 말한다.

"루이 9단의 장점은 전투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데 있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녀가 지독한 바둑 공부벌레라는 것이다. 그녀는 37세의 나이에도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목진석 5단)

"중요 시합이 있는 날이면 언제나 한국기원 검토실에서 루이 9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경희대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것 외에는 모든 시간을 바둑 두고 연구하는데 쏟는 것 같다." (한국기원 이성구 홍보팀장)

앞으로 그녀의 시대가 최소한 3∼4년은 더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녀는 그같은 예측에 부응하듯이 18∼21일까지 열린 제1회 동방항공배 세계여자바둑선수권대회에서 각국의 여성 강호들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