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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분당 장례식장 효성원으로 간 전시회

입력 | 2000-08-22 18:44:00


망자(亡者)에게 조의(弔意)를 표해야 하는 특별한 관계에 있지 않고는 가지도 않고 가고 싶지도 않은 곳, 조문객이 밤새도록 고스톱을 치고 떠들어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답답함이 가슴을 짓누르는 곳, 바로 그 장례식장에서 미술전시회가 열려 화제다. 9월 15일까지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남서울 공원묘원앞 장례식장 효성원.

장례식장 바깥 마당에는 365벌의 빨래(강승희의 ‘빨래’)가 걸려있다. 하늘로 올라간 망자의 흔적처럼 365일의 일기가 365벌의 삼베천에 꼼꼼이 수놓아져 있다. 마당 잔디위 노란길(허진의 ‘노란길’)은 마당 안쪽 모과나무로 연결된다. 작가는 기괴한 형상을 한 이 모과나무를 영혼의 놀이터쯤으로 생각했다. 식장 외벽에는 수백마리의 금속나비(정인엽의 ‘나비가 돼버린 영혼’)가 달라붙어 바람에 날개를 팔랑거리고 있다.

장례식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양쪽에 설치된 22개의 스피커(김기라의 ‘그리고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뒤섞여 아수라장이다. 계단 한쪽에는 탄생부터 백일까지의 소리(산모의 고함소리, 아기의 울음소리, 자장가 소리 등)가, 다른 한쪽에는 죽음에서 49재까지의 소리(망자의 신음소리, 곡소리, 상여소리, 천수경 독송소리 등)가 담겨있다. 계단을 내려서면 소리는 멈추고 다시 깊은 침묵에 빠진다.

장례식장안 어느 빈소에는 흰 털천에 포근하게 싸인 관이 놓여 있다(이소림의 ‘인위적 공간에서의 안식’). 관 한쪽에 설치된 모니터에서는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간 어머니를 상징하듯 푸른 하늘에 구름이 떠가는 장면이 나온다.

푸른 휘장이 엄숙하게 내걸린 또 다른 빈소로 들어가면 홀로 점을 보는 곳(박소영의 ‘오렌지 카드방’)이 나타난다. 방석아래 물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단위에 앉아 관이 놓이는 쪽의 차가운 푸른 불빛을 보며 통을 흔들어 점괘를 뽑는다. 옆에 딸린 ‘복채방’에는 누군가 이런 메모를 써놓았다.

“앞으로 정말 잘할께요. 게임도 하루 한시간 이상 하지 않고 성생활도 반듯하게 할께요. 그러니까 제발 예쁘게 봐주시고 좀 도와주세요. 효성원 귀신님들. 2000. 8.16.”

실제 장례식장을 이용하는 상주(喪主)나 그 가족들은 전시에 상당한 거부감을 보였다. 그래서 박소영의 ‘무제’, 안희아의 ‘에피소드’, 이지향의 ‘신선한 바퀴벌레 팝니다’ 등의 작품은 일단 치워졌다. 전시를 기획한 김기라씨(경원대 환경조각과 대학원생)는 “‘장례식장의 분위기를 어지럽힌다’며 호통치는 상주도 있어 전시 자체를 이틀 정도 중단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알음알음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관람객들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함께 효성원을 찾은 김한조(26) 정송희씨(29)는 “전시장소만 특이하게 택해 관심을 끌려고 한 것이 아닌가도 생각했으나 막상 와서 보니 작품마다 진지함이 엿보였다”며 “장례식장의 음산함을 깨면서도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만드는 전시”라고 말했다. 031―705―4444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