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이 해방 이후 남북한이 가장 친밀해진 때가 아닌가 싶다. 스포츠에서도 ‘해빙무드’가 찾아오고 있다. 우선 시드니 올림픽에서 남북한의 동시 입장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남북한의 체육 교류 논의도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
사실 남북한 체육교류 또는 단일팀 구성에 대한 논의는 63년 이후 올림픽 등 큰 대회가 있을 때마다 매번 거론돼 왔다. 그러나 결렬될 때가 훨씬 더 많았다.
분단 이후 단일팀 구성은 91년 일본 지바 세계 탁구 선수권대회와 그해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 두 차례뿐이었다. 지바 세계 탁구 선수권에서 단일팀은 여자 단체전에서 우승했다. 포르투갈 대회에선 8강 진출에 성공했으니 남북은 단일팀만 만들면 항상 선전한 것이다.
체육의 남북 화해에서 단일팀은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중에서도 ‘탁구 단일팀’에 대한 기대는 어느 종목보다 크다.
내년 오사카 세계 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이미 국제탁구연맹(ITTF)에서는 남북한에 단일팀 구성을 제안했다. 주최국 일본도 환영의 뜻을 나타낸 바 있다. 지난 7월 평양에서 열린 평양 모란봉팀과 삼성생명 남녀 탁구단의 ‘통일탁구대회’도 비록 민간차원의 교류라고는 하나 남북 탁구 단일팀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 행사는 삼성전자가 평양체육관에 전광판을 설치해주고 전광판 점등식 행사를 가진 뒤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남북한 선수들과 임원들은 손에 손 잡고 체육관을 도는 모습을 보여줘 TV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재미있는 것은 통일탁구대회에 나선 남북한팀의 선수 기용에 있었다. 남쪽의 삼성생명 탁구단은 지난해 종합선수권대회에서 남녀 동반우승을 차지한 국내 최강팀이었다. 북쪽의 평양 모란봉 탁구단 역시 북한 내 최고 팀으로 알려진 명문팀이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여자부의 유지혜 이은실, 남자부의 이철승 오상은 등 대표 선수를 모두 뺀 채 신진 선수들을 대거 출전시켰다.
삼성생명의 주축 선수들이 빠진 것은 시드니 올림픽을 대비하는 대표팀의 훈련 일정에 차질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러나 경제 협력의 일환으로 북한에서 갖는 행사이니만큼 “이겨봤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삼성측의 계산도 작용한 듯했다.
그러나 북한의 선수 기용은 달랐다. 북한은 “꼭 이겨야 된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1만6000여명의 자국 관중이 지켜보는 데다 남북한에 동시에 TV로 생중계되는 행사라는 점이 부담을 주었을 듯싶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북측 선수 중 북한 여자 탁구의 간판인 김현희는 모란봉 소속이 맞다. 그러나 남자 단식에 나선 김성희와 여자 복식에 나선 김향미는 실은 모란봉 소속이 아닌데 이번 대회를 앞두고 모란봉팀에 ‘긴급 수혈’됐다는 것이 평양을 다녀온 남측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김향미는 북한 여자 탁구의 ‘신세대 주자’로 각광받는 선수다. 경기를 치러본 박해정이 “김현희와 김향미는 단일팀이 구성된다면 분명 한몫 할 선수들”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통일탁구대회의 모란봉팀은 사실상 북한의 국가대표팀이었던 셈이다.
결과는 자명했다. 이 대회에서 모란봉 팀은 완승을 거뒀다. 그러나 두 팀 사이의 분위기는 대회기간 내내 화기애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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