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에 이어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는 전당대회가 끝났습니다. 앨 고어 민주당 후보는 LA에서 열린 전당대회를 계기로 르윈스키 스캔들로 만신창이가 된 클린턴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특히 민주당은 LA가 40년 전 미국인들의 영원한 우상인 존 F 케네디를 민주당 후보로 선출함으로써 닉슨후보에 극적인 역전승을 기록한 곳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역전극이 재현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당대회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고어가 처음으로 부시를 앞선 것으로 나타나 민주당을 고무시켜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표면적인 측면을 넘어서 이번 전당대회는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는 미국사회의 빛과 그림자를 실감하게 해주었습니다. 전당대회 동안 다양한 사회단체들과 활동가들은 LA로 몰려와 미국사회의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대규모 항의집회를 열었습니다. 항의의 핵심은 80년대 이후 역대 정부가 추진해온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정책'과 '지구화가 초래한 사회적 양극화와 빈곤 문제'들이었습니다. 사실 미국사회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신자유주의에 의해 미국사회는 이제 경쟁에 살아남은 20%와 도태된 80%로 양극화된 20대 80의 사회로 변해 버렸습니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하이테크와 벤처, 주식투자로 떼돈을 번 소수와 최저임금수준을 간신히 넘는 서비스 부문의 근로자들로 양극화돼 빈곤층의 비율이 높아만 가고 의료보험이 없어 병원에 갈 수 없는 어린이들이 1000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더욱 암울한 것은 전통적으로 공화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었던 민주당이 92년 클린턴이 내세운 '신민주당'이라는 구호와 함께 경제정책에 관한 한 공화당의 신자유주의정책을 수렴함으로써 이 문제들을 정치권이 풀어낼 능력이 없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이 같은 현실이 사회단체들을 거리로 내몬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운동의 부활은 이미 세계무역기구(WTO) 회의를 무산시킨 시애틀과 국제통화기금(IMF) 회의에 타격을 준 워싱턴의 시위가 보여준 바 있습니다. 사실 이번 전당대회도 시애틀과 같은 사태를 우려해 전당대회장을 완전히 철조망으로 봉쇄하고 주변도로를 차단해 '요새화'하고서야 치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상가들은 소요를 우려해 모두 철시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전당대회로 엄청난 수입을 얻을 것이라는 시 당국의 주장과 달리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봤다"는 불평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같은 예방조치에도 불구하고 결국 최루탄이 터지고 곤봉과 데모진압용 특수총탄이 난무했습니다. 그 결과 미국이 제3세계로 전락했다는 탄식이 언론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우리도 김대중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정책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난해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가 이를 집계하기 시작한 79년 이후 최악을 기록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번 대회는 미국의 빛을, 미국을 버텨주는 힘의 원천을 재확인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미국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고 있는 사상, 표현, 집회의 자유입니다. 당초 LA경찰은 시애틀사태 등을 이유로 시위를 전당대회장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만 하도록 집회 제한조치를 취했습니다. 이에 사회단체들은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연방법원은 전당대회 주변의 모든 사람의 안전을 보호하는 것은 분명히 정부의 의무지만 단지 폭력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에 기초해 수정헌법 1조의 권리를 제한할 수는 없다 고 판결했습니다. 그 판결 덕으로 시위대는 전당대회장 코 앞에서 시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비춰볼 때 얼마 전 대한변협이 발표한 지난해 인권보고서도 지적한 바 있듯이 이 같은 기본권에 대한 현 정부의 개혁은 미흡하기만 합니다. 사실 인권대통령을 표방하고 있는 김대중정권 2년의 국가보안법 구속자는 김영삼정권 초기 2년보다 많습니다. 게다가 야당은 한술 더 떠 국가보안법 개정 등 여권의 부분적인 기본권 개혁 움직임에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같은 인권후진국, 기본권후진국을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개혁입니다.
손호철(서강대교수·UCLA 교환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