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가 나라를 살린다' 최윤재 지음/청년사 펴냄/317쪽 9000원▼
2천년전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려 진시황과 함께 묻혔던 한비자(韓非子·BC 280~233·책의 이름이기도 하다)가 21세기 자본주의 한복판에 구리거울을 들고 솟아올랐다.
어떤 사람은 한비자의 등장을 난세의 영웅호걸이 출현한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하고, 새로운 이념적 지주가 나타났다고도 한다.
하지만 한비자가 들고 나타난 것은 시인 윤동주님이 부끄러워하며 자신을 비춰보았던 '구리거울'이었다.
한비자는 그 구리거울을 통해, 알게 모르게 유가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욕심을 버려야지'라고 자신을 담금질하던 '군자추종세력'인 우리에게 '솔직히 그대들의 욕심을 내보여봐라'며 체면과 도덕의 허울을 벗긴다.
한비자는 관중과 상앙에서 비롯된 법가(法家)사상의 완성자이자 엄격한 신상필벌(信賞必罰)을 통치술로 제시한 현실주의자다.
인의(仁義)에 바탕을 둔 덕치(德治) 중심의 유가와는 정반대편에 있다.
이 책은 유가와 법가 사이에 있었던 논쟁을 거울삼아, 오늘날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가치관의 문제를 생각해본 것이다.
"세상에는 군자인 척하지만 진짜 군자는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한비자는 소인배를 위한 이야기이다. 경제학도 마찬가지다. 남을 위할 줄 모르고 자신만을 위하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은 사람들의 욕심이 너무 많아서 생겨난 것이 아니며, 욕심을 자제하라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욕심 자체는 사악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며, 억제될 것이 아니라 정당한 방법으로 채워져야 한다.
지은이는 이런 주장을 통해 한국의 개혁을 완성하고자 하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재벌개혁과 부정부패, 교육, 의약분업 등 당면 문제로 확대한다.
재벌개혁은 시장원리에 맡겨야 하고, 부정부패 근절을 위해 의리와 인맥, 인정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청산해야 한다고 나선다. 학원의 완전 자율화와 과외 금지조치 철폐론도 제기한다.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의사들의 폐업사태에 대해서는 한비자 비내(備內)편의 '의사와 관 짜는 사람' 의 이야기를 빗대어 설명한다.
"의사가 남의 상처를 빨고 남의 나쁜 피를 머금는 것은 골육의 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익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이래서 지은이는 의사들의 이익을 유지해주는 범위 내에서 제도가 보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의사들에게도 구리거울을 비추며 "돈 때문이라고 솔직히 말하라"고 충고한다.
한비자를 이 시대로 끌어낸 지은이 최윤재교수는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미시간주립대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고려대 경제학교수로 재직중이다. 최근 논문으로는 '개혁과 저항' '부패의 본질과 영향''케인즈 경제학과 관련한 속설'등이 있다.
최건일gaegoo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