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규씨
지난해 이무렵, 자전에세이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로 수많은 가슴을 울리고 장안의 지가(紙價)를 높였던 서진규씨(52).
이번에 또 한 권의 자전에세이를 냈다. ‘희망은 또다른 희망을 낳는다’(푸른숲).
그가 누구인지,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런데 왜 또 책을 냈을까.
서씨를 만나자마나 이것부터 물어보았다.
“작년 책을 내고 한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한국의 자녀 교육이 좀 걱정스러웠습니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멋대로 키워놓고는 학교만 탓하고 정책만 탓하는 것이었어요. 대체 부모들이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거예요.”
대답은 좀 의외였지만, 그의 삶만큼이나 도전적이었다.
첫 번째 책이 처절했던 그의 삶과 그것을 극복해낸 삶에 관한 감동적인 기록이었다면 이번 책은 그 어려움 속에서 딸 성아를 스물다섯의 어엿한 젊은이로 키우기까지의 애환을 담은 일종의 교육 에세이다.
따지고 보면 딸 성아도 결손 가정의 아이였다. 엄마 서씨는 두 번 이혼한데다 미군 장교로 미국 독일 한국 등지로 옮겨다니며 근무하는 바람에 딸 아이는 늘 외롭게 자라야했다.
“성아가 일곱살 때, 그 어린 나이에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의 외가에 가야했습니다. 그것도 파리 도쿄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면서. 딸애를 혼자 보내는 제 가슴은 미어졌지만, 그것도 하나의 교육이었다고 봅니다. 어려운 환경이 아니었다면 어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버드대 사상 첫 모녀 재학생이었던 서씨와 딸 성아. 성아는 ROTC에 지원해 올 6월 대학을 졸업하고 미 육군장교가 됐다. 엄마를 닮고 싶어서였다지만, 딸이 군인이 된다고 했을 때 엄마 마음은 어땠을까.
“좋은 선택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장교 출신이니까. 그러나 전쟁에 참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어느날 갑자기 전쟁터에서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득해졌습니다. 딸애가 그러더군요. 인간은 모두 죽는 것이고 장렬한 죽음이라면 오히려 좋은 거라고 엄마가 말하지 않았냐고요. 죽음은 두렵지 않은데 혹시 엄마와 영영 헤어질 수도 있다니 그게 너무 슬프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에미 마음이 어땠겠어요.”
늘 당당한 서씨였지만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사춘기의 딸이 엄마를 무시하거나 엄마를 부끄러워할 때, 그 때도 화가 나고 슬펐다고 한다. 그래도 반항심을 인정해준 것이 딸에게 도움이 됐다.
자신의 시련을 극복하는 것과 그 시련 속에서 딸을 키우는 것 중 무엇이 더 어려웠을까.
“딸을 잘 키우는 게 훨씬 더 어려웠습니다. 제 인생은 저 혼자만의 선택인데 딸은 저의 생각을 전해주고 그 판단을 기다려야 하니까요. ”
시련을 통해 자신을 만들고 자신을 통해서 딸 성아를 만든 서씨. 당당하게 자라준 딸 성아는 서씨의 삶에 있어 진정한 ‘희망의 증거’다.
미국에 있는 성아는 요즘 군대생활을 하면서도 틈을 내 서씨의 지난 번 책을 영어로 번역하느라 바쁘고, 서씨는 한국에서 강연 인터뷰 등을 하느라 바쁘다. 이제 그의 남은 희망중 하나는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것이다.
서씨는 1990년 마흔둘의 나이에 하버드대 대학원에 합격했고 이어 하버드대 대학원 국제외교사 및 동아시아언어학과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학문의 길과 군인의 길 사이에서 고민하다 96년 소령으로 예편하고 학문을 선택했다. 내년초 미국에 돌아가면 본격적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쓸 계획이다. 논문 주제는 ‘한국 동란의 기원과 발발에 미친 일본의 영향’.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