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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투자 개미열전]"주식이 남긴건 고통뿐"

입력 | 2000-08-29 18:56:00


‘타임머신을 타고 13년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87년 주식투자를 시작한 최준영씨(37)의 이뤄질 수 없는 바램이다. 주식을 알고나서부터는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그래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주식은 쳐다보지도 않을거라는 최씨.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가 주식에 입문한 것은 87년 봄이었다. 최씨는 적은 월급에도 불만 없이 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던 타고난 공무원이었다. 하지만 열심히 일한 것이 화근이 됐다. 과도한 업무에 건강을 해치고 만 것.

건강이 악화되자 최씨는 직장을 스스로 떠났다. 이 때 받은 퇴직금과 그동안 저축한 돈을 들고 찾아간 곳이 증권사였다. 최씨는 “생계 대책을 세워야 했는데 건강이 좋지않으니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며 주식에 눈을 돌린 이유를 밝혔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가만 놔둬도 투자원금은 스스로 알아서 몸집을 불려갔다. 최씨는 “자고 나면 급등하고, 하룻밤 지나면 또 급등하던 정말 꿈같은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욕심이 커진 그는 친척들에게까지 돈을 빌어 주식에 몽땅 쏟아부었다.

그러나 주식을 만만하게 보는 최씨에게 본 때를 보이려는 듯 90년 증시 대폭락이 찾아왔다. 친척들에게 빌린 돈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빚을 갚기 위해 전셋집에서 나와 월세 로 이사를 가는 신세가 됐다.

2년 뒤 새 직장에 들어가 돈을 만지게 되자 또다시 주식에 눈을 돌렸다. 예전보다 더 배짱이 커졌다. 월급도 모자라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카드로 현금서비스까지 받았다. 이 때부터 빚을 갚기 위해 또다른 카드를 발급받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나름대로 투자요령이 생겼다고 판단한 그는 한 번에 만회를 하겠다는 생각에 온갖 수단을 동원해 마련한 돈을 모조리 주식에 쓸어넣었다.

그러나 하늘은 철저히 최씨를 외면했다. 그해 말 국제통화기금(IMF) 체제가 시작된 것. 고통의 나날이 시작됐다. 직장과 집에는 독촉전화와 독촉장이 빗발쳤고 가족들마저 신경쇠약 증세를 보였다. 급기야는 전기와 전화가 끊어지는 신세까지 돼버렸다. 최씨는 직장을 다니기가 창피해 사직서를 썼다.

최씨는 요즘도 주식투자를 하고 있다. 주식이 적성에 맞다는 생각에 투자상담사 과정까지 수료하고 전업 투자가로 눌러앉았다. 그는 “친척들의 도움으로 적은 금액이지만 조금씩 불려가면서 1억원이 넘던 빚을 2000만원 이하로 줄였다”고 밝혔다.

주식 때문에 그토록 고통을 받았으면서 전업 투자가로 나선 이유에 대해 그는 “그동안의 실전 투자 경험을 바탕으로 만의 하나 성공을 한다면 주식투자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주식투자는 가급적 안하는게 낫다 △빌린 돈으로 투자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나름대로의 투자 원칙을 터득하기 전에는 손을 대지 말아야 한다. 최씨는 “주식은 내 인생을 멍들게 했지만 그런 주식을 미워할 순 없다”고 말한다.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