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에 빗대어 말하면 이현승 감독은 이야기꾼이 아니라 문체주의자다. 한 토막의 진지한 이야기로 승부를 걸기보단 붓끝의 섬세함으로 영화에 회화적 이미지를 이식한다.
는 이미지에 집착했던 이현승 감독의 스타일이 그대로 살아있는 깔끔한 멜로영화다. 마치 30초 내에 구매욕구를 자극하려는 CF 화면처럼, 주인공들은 '이것 안 사고는 못 배길 걸'하는 표정으로 관객들을 유혹한다.
그림 같은 집 '일 마레(Il Mare)'에 살고 있는 성현(이정재)은 이 집의 장점을 설명해주기 위해 고용된 '모델하우스 보이'같고, 노란 은행잎을 밟으며 걸어가는 은주(전지현)는 패션 의류를 선전하는 'CF 걸'처럼 보인다.
게다가 두 사람은 영화 내내 해물 스파게티, 샤르도네이 와인 같은 서양식 요리의 비법을 전수하고 멋진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지침서까지 제공해준다. 두 주인공이 스파게티를 먹으며 짓는 표정은 광고 모델들이 흔히 짓는 앙큼한 웃음처럼, 귀엽고도 가증스럽다.
카메라가 바다를 훑으며 '일 마레' 안으로 밀려들어오면 그 안엔 방금 막 이 집으로 이사를 온 성현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아버지가 설계한 이 집의 첫 번째 주인이다. 영화는 이것을 교란시키려는 듯 '일 마레'를 떠나는 은주의 모습을 먼저 보여주는데 알고보면 은주는 이 집의 두 번째 주인이다.
은주는 '일 마레'를 떠나기 전 새로운 주인에게 "기다리는 편지가 있으니 부쳐달라"는 편지를 남기고, 그 편지가 새로운 주인 대신 과거의 집주인인 성현에게 배달되면서 두 사람은 시간을 뛰어넘는 엉뚱한 교감을 나누게 된다.
전지현은 이 영화에서 테크노댄스로 다져진 몸을 숨긴 채 성숙한 여인의 자태를 풍기고 있으며, 이정재는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처럼 생활에 치어 살지 않는 대신 넋두리가 많다.
는 시간을 뛰어넘은 사랑을 다뤘던 나 처럼 두 주인공이 사실은 다른 시간대에서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코드들을 삽입한다. 물론 시차를 알려주는 코드들의 아귀는 딱딱 들어맞고, 이루지 못할 두 연인의 사랑은 가끔 아릿한 느낌도 전해 준다.
멜로 영화가 아름다운 영상과 아릿한 감정의 동화를 선사한다면 할 일 다한 것 아니냐고? 물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영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는 연인들, 쓸쓸한 기운이 감도는 운치까지 덧붙인 이 영화는 달콤한 멜로영화로선 별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2시간 동안 CF 같은 영상을 지켜보는 건 솔직히 힘에 부치는 일이다.
황희연 benot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