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디지털 정보 혁명에 따른 변화를 너무 낙관한다. 인터넷을 둘러싼 과대 포장된 신화, 벤처와 닷컴 기업의 유행적 열풍, IT 기업의 광고가 반복적으로 심어주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환상, 이미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 정보통신기술 지상주의. 이런 것들이 시야를 가려 디지털 기술이 몰고 오는 위험과 재앙의 가능성을 제대로 볼 수 없게 한다. 디지털 혁명의 어두운 그림자를 검토한다.
후세의 역사가들에 의해 김대중 정부의 업적 중 최악의 실정으로 평가받을 것은 무엇일까?
대대손손 두고두고 원망을 듣게 될 엄청난 실수는 전국민의 지문과 사진을 전산화해 디지털 데이터베이스에 담은 것이다.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 엄청난 인권 침해가 소위 인권 대통령이라 자부하는 김대중 정권에서 일어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이다.
◇야만과 기술의 결합
전국민의 지문과 사진의 데이터베이스라는 야만과 기술의 절묘한 결합은 세계 최초이자 최후의 시도로 남게 될 것이다. 권위주의 잔재가 남아 있는 후진국들에는 이런 데이터베이스를 만들 기술과 돈이 없을 터이고, 일정한 기술력과 경제력을 보유한 선진국에서는 프라이버시 보호에 대한 인식과 제도가 확고하기에 전국민의 지문을 채취하여 전산화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정보는 즉각적 접근성과 이에 기반한 검색 가능성이라는 특성을 지닌다. 디지털 정보는 그것이 텍스트든 이미지든, 사진이든 지문이든, 정보가 그 자체로서 색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또 경찰청이 도입하려는 휴대용 신원확인기를 이용하면) 언제 어디서나 즉시 검색할 수 있다.
실제로 경찰청에서는 오른손 엄지손가락의 특징점을 추출하여 지문을 인식하는 지문 자동 인식 시스템을 특수 전과자에 한하여 운용하고 있다. 이제 전 국민을 상대로 이 시스템을 확대 실시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 야만스런 지문 데이터베이스를 폐기 처분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개인 정보에 대한 불법적 데이터베이스는 일단 한번 만들어지면 절대 없앨 수 없다는 것이 철칙이기 때문이다. 완전복제성을 갖는 디지털 정보의 특성상 얼마든지 복제가 가능하며, 누가 언제 얼마만큼 몰래 복제하여 감추어 두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주민증에 지문날인 거부
나는 지금 주민등록증이 없이 살고 있다. 지문 날인을 거부하느라 새 주민증을 발급받지 못했고 옛날 주민증은 지난 6월1일부터 효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지문날인을 거부하는 모임 (fprint.jinbo.net)은 지문날인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위헌이며 또 이렇게 수집한 지문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 역시 당연히 위헌이라는 취지의 헌법소원을 지난 해 9월에 제기해 둔 상태이다.
우리 나라 지문 날인 제도는 주민등록증 발급신청 시 지문을 찍어야 한다고 규정한 ‘주민등록법 시행령’ 33조 2항 한 줄에 근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지문은 주민관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 주민등록법에서 규율할 대상도 아니다. 실제로 주민등록법에 의해 등록된 지문을 경찰청에서 보관 관리하고 있지 않은가?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
경찰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범죄자 검거와 대형사고 등의 경우 보다 과학적으로 개인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지문 날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건 정말 지나가던 소가 웃을 노릇이다. 일본 정부가 자기 국민은 제쳐 두고 재일교포의 지문만을 채취하여 말썽을 일으켰던 것도 ‘대형사고에서 과학적으로 신원을 확인’해주기 위해서인가? 히틀러가 유태인의 지문을 강제로 채취한 것도 독개스실에 쌓여 있던 유태인의 신원을 ‘과학적으로’ 확인해 주기 위해서였던가? 전국민의 지문을 채취하여 전산화하겠다는 것은 전국민을 범죄자 취급하겠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김주환(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