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시장은 종로5가 광장시장부터 창신동 문구거리까지 약 1.3 Km의 청계천로 좌우와 그 안쪽 골목, 그리고 흥인문로의 좌우 일대에 분포돼 있는 약 30여개 상가, 2만 7000여 점포를 통칭하는 말이다. 고용 인구 10만, 연간 매출액 10조, 수출 19억 달러라는 수치가 말해주듯 1990년대 동대문 시장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룩하였다. 디지털, 인터넷, 생명공학 등 소위 첨단 산업에 대한 논의가 무성한 시대에 이처럼 동대문 시장의 성공에 관한 얘기가 신선해 보이는 것은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몇 가지 강력한 시사점 때문이다.
우선 재래시장에서 패션 네트워크로 변신한 동대문시장은 사양 산업과 첨단 산업에 대한 우리들의 고정 관념을 여지없이 깨고 있다. 재래시장은 물론이고 일반적으로 신발이나 의류 산업을 사양 산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미국의 나이키나 이탈리아의 베네통을 사양 기업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인체 공학과 혁신적인 디자인, 정보 기술과 정교한 물류 시스템을 활용해서 산업을 선도하는 첨단 기업들이다.
마찬가지로 고객 중심의 상품 기획, 발빠른 신제품 출시 등을 통해 재래 시장의 변신을 주도하고 있는 동대문시장도 엄연히 첨단 산업이다. 흔히 생각하듯 첨단 산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기술을 활용해 경쟁의 룰을 바꾸면 사양 산업도 얼마든지 첨단 산업으로 재도약 할 수 있다는 증거를 동대문 시장이 직접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동대문시장의 또 다른 성공 요인은 기획, 생산, 판매간에 견고한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다는 점이다. 동대문은 시장이라는 특성상 생산자와 상인 간의 오랜 거래 관계가 지속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과 지식 공유가 가능한 협력 체제를 구축하였다. 특히 동대문 시장은 패션과 관련된 모든 기능들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 네트워크가 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모여있다는 강점이 있다.
사실 전세계적으로 국제경쟁력을 갖춘 특정 산업은 한 국가 내에서도 지역적으로 집중화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영화 산업과 첨단 기술 산업은 미국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에 모여 있고, 고급시계산업과 국제금융업은 스위스 제네바와 취리히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산업의 지역 집중은 물류 비용을 절감시킬 뿐만 아니라 정보와 지식의 확산, 생산과 구매 단계에서 규모의 경제 효과, 관련 산업의 발달 등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에 최근 기업 전략은 물론 산업 정책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는 개념이다.
산업에 대한 연구나 책이 부족한 우리나라 실정에서 동대문시장이라는 독특한 성공 사례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돋보이는 책이다. 저자가 제안한 것처럼 몇가지 문제점이 보완되어서 동대문 시장이 세계적인 패션 네트워크로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이동현(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