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는 우리 시대의 가장 부지런한 철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애써 분류한다면 그 자신을 ‘철학자’가 아니라 ‘철학교수’라 생각한단다. 철학교수는 철학을 학문으로 하는, 그래서 대체로 전문적인 논문들을 쓰는 사람이고 철학자는 대중을 상대로 구체적인 삶의 문제들에 철학적인 해석을 내리는 사람이라는 사뭇 어색한 구분에 따른 것이다.
그렇다면 ‘지상으로 내려온 철학’은 철학교수 이진우가 철학자 이진우가 되어 쓴 책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이른바 ‘거리 두기의 역설적 글쓰기’ 방법을 사용하여 ‘어렵지만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을 쓴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그랬듯이 지금 당장 우리 주변에서 펼쳐지고 있는 여러 현상들이 드리우는 그림자의 본질을 보여주는 ‘삶바라기의 글’들이다.
내가 미국 미시건대 교수로 있던 시절 들었던 철학 강연 하나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와 함께 그곳 명예학술협회(Michigan Society of Fellows)에서 특별연구원(Junior Fellow)으로 발탁되어 연구하고 있던 젊은 철학과 교수의 자기성찰이었다. 그에 따르면 철학이 난해한 유일한 이유는 철학을 하는 이들이 난해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철학이 아무리 ‘가슴과 영혼을 무는 독사’라지만 아무나 이해할 수 있는 시시껄렁한 한담처럼 들린다면 학문의 여왕은 커녕 다른 학문의 더부살이도 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이진우는 그의 학위 논문이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함은 물론 독일어로 출판되어 ‘철학교수’로서 이미 그의 입지를 분명히 한 학자다. 그런 그가 멀티미디어시대에 사는 우리의 고민, 도덕의 위기라는 허상, 문화의 세계화 등을 비롯한 생명, 문화, 정치, 미학, 페미니즘 등 삶의 구체적인 현상들에 대한 ‘문제화의 철학’을 들고 지상에 내려와 줘서 나는 참 고맙다.
과학의 대중화와 철학의 대중화를 추구하는 나와 그에게 똑같이 던져지는 질문이 있다. “왜 글을 쓰십니까?” 돈도 되지 않고 읽히지도 않는 글을 왜 쓰느냐는 얘기다. 팔리지도 않는 과학책을 쓰느라 애쓰지 말고 소설이나 체험담을 써보지 그러느냐는 얘기를 나 역시 심심찮게 듣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 위해서 글을 쓴다”는 그의 생각에 나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전문성과 대중성을 함께 갖춘 책을 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게 그렇듯이 ‘지상으로 내려온 철학’은 많은 이들에게 오랫동안 되씹을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최재천(서울대교수·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