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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의 세상스크린]좌절없인 성공도 없다

입력 | 2000-09-04 19:03:00


영화 ‘터미네이터’1편이 세계적인 히트를 하던 13년전쯤의 일입니다.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브이’와 ‘우뢰매’ 시리즈로 유명한 김청기 감독님이 ‘바이오맨’ 시나리오를 가지고 출연 섭외를 해왔습니다. 갑작스런 어린이용 영화 섭외라서 좀 당황했지만 시나리오를 읽어본 뒤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시나리오가 무척 짜임새있고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대로 찍히기만 한다면 ‘터미네이터’ 못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시나리오 완성도와 김감독님의 순수한 열정 때문에 그 영화에 출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 흥행참패가 던져준 교훈

우리 영화팀은 약 두 달간 더운 여름날 태국의 오지를 돌며, 홍콩의 푹푹 찌는 더위를 이겨내며 정말 최선을 다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든 영화의 시사회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시나리오의 훌륭함을 특수효과 기술이나 물량이 따라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김청기 감독님은 성심껏 영화를 만들었지만 거대 자본의 외국 SF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의 눈에는 유치하기 짝이 없었나 봅니다. 결국 그 영화는 서울관객 1만명도 채우지 못하고 실패한 영화로 남게 되었습니다. 좋은 시나리오도 그 의도만큼 영상화되지 못한다면 별 의미가 없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영화 이후 저는 시나리오를 볼 때마다 “과연 얼마만큼 표현될 수 있을까?”라는 현실감각을 얻게되어 배우생활을 하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1986년 사극 ‘됴화’에서 상투를 쓰고 연기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 연기했지만 역할이 제게 맞지 않아서인지 결과적으로 매력없게 보였나 봅니다. 극장에서 관객들은 제 상투 쓴 모습만 보면 큭큭 웃어댔습니다. 그 경험 이후 저는 “배우에게 적역은 무엇인가?”하는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성공한 영화는 제게 인기와 영광을 주었지만 실패한 영화는 제게 늘 교훈을 줍니다. 그 교훈은 저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었고, 그 생각은 저를 발전시켜 주었습니다.

미국의 뛰어난 홈런왕 베이비 루스는 자신이 친 홈런의 두 배만큼 아웃을 당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삼진 아웃을 당했을 때 그는 비로소 홈런치는 법을 깨달았는지도 모릅니다. 화려한 성공은 무수한 실패와 좌절이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요?

◇ 메달 못따도 실망마세요

이제 우리는 얼마 뒤면 시드니에서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보게 됩니다. 성공한 이에게는 물론 축하와 감동의 박수를 힘껏 보내겠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이가 실패를 겪게 되겠지요?

수년간 태릉에서 흘린 땀방울과 메달을 따기 위해 바친 청춘을 짐작 못하는 바 아니지만,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마세요. 당신의 인생 자체가 실패한 게 아닐 테니까요. 귀국할 때 고개 숙이고 김포공항을 나서지 마세요. 그 다음 성공은 당신들 몫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