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첫 올림픽(15일∼10월1일)이 열리는 홈부시 베이(Homebush Bay). 호주 시드니 도심에서 서쪽으로 14㎞ 가량 떨어져 있는 이 곳을 찾아가자 주경기장인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한 13개 경기장 등 여의도 크기 만한 ‘올림픽 파크’가 들어서 있었다.》
환경올림픽을 표방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올림픽 파크를 본 첫 느낌은 최첨단 경기장이구나 하는 느낌 뿐이었다. 또 주경기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흉뮬스런 웅덩이,군데군데 위치한 원추형의 민둥산 등을 보면서 “환경올림픽을 한다더니 뭐 이럴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첫 인상은 금세 바뀌었다. 16.8㏊ 크기의 웅덩이는 다름아닌 벽돌공장이었다고 한다. 시드니올림픽조직위원회(S0COG)는 당초 이곳에 테니스 코트를 지으려 했는데 호주의 토종 개구리인 그린 앤드 골든 그로그(The Green & Golden Grog)가 발견돼 이 계획을 철회했다는 것.
뉴사우스웨일즈(NSW) 주정부도 계획 변경에 따른 예산 초과지출과 올림픽 타운의 전체적인 구도가 바뀌게 된다는 부담 때문에 고민을 했고 논란도 많았지만 환경올림픽에 부합한다는 생각으로 다른 부지에 테니스코트를 지었다는 마이클 나이트 올림픽장관의 설명이다.
▼홈부시는 호주판 난지도▼
민둥산은 왜 그대로 놔뒀을까. 안내원이 “2010년까지 이 곳에 세계에서 가장 큰 환경테마파크(밀레니엄 파크랜드)를 건설할 예정”이라고 설명,더욱 의아스러웠다. 수십년 동안 쓰레기를 매립하던 구덩이에 경기장 건설현장에서 파낸 흙을 쌓아 동산을 만들고 이 동산에 나무들을 옮겨 심고 근처에서 채취한 풀씨를 뿌려 텃새와 동물의 낙원으로 만들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올림픽 시설의 80% 이상이 집중돼 있는 홈부시 베이는 ‘황폐해진’ 인류의 미래를 그린 영화 ‘매드 맥스’의 촬영 현장이었다. 추가 세트가 필요없을 정도로 황폐함을 표현하기에 알맞은 땅이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주립 벽돌공장 도축장 군사기지로 사용돼 왔고 60년대 이후에는 쓰레기 매립장으로 쓰여 왔다.
간혹 보이는 민둥산이 당장은 눈에 거슬리긴 했어도 이 곳이 ‘버림받은 땅’이자 ‘호주판 난지도’였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멋진 체육시설과 공원이 조성돼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실감케 했다. 1억3700만 호주 달러(약 1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고 한다.
▼선수촌은 태양열 주택으로▼
멋진 시설 보다 더욱 관심을 끈 것은 올림픽 관련 시설 하나하나에 환경적 요소를 최대한 반영했다는 점이다.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참가 선수단 전원이 한 곳에 머물게 되는 뉴잉톤의 선수촌은 태양열 주택으로 건설됐다.
올림픽 파크안에 30m 높이의 태양광 발전탑 19개를 설치, 밤에도 대낮처럼 주위를 밝힐 수 있도록 했으며 실내에서 오염된 공기는 천정에 설치한 태양열판으로 가열해 저절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올림픽을 계기로 홈부시 베이 전체가 지구 남반부에서 가장 큰 ‘솔라 시티’가 된 셈이다. 시드니에 살고 있는 시인 윤필립씨는 “솔라시티 개념은 주로 원자력에 의존하는 호주의 전력공급원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11만5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주경기장 전기의 일부도 석유나 석탄이 아닌 2개의 500㎾ 짜리 가스병합발전 시설을 통해 공급,기존의 화력발전소 등에 비해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 발생량을 40% 가까이 줄였다는 조직위측의 설명. 수영장은 자연광을 최대한 이용함으로써 10개의 전구 만으로 조명이 가능토록 했는데 약간 어둡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나름대로 신선했다.
호주는 연평균 강우량이 우리나라의 3분의1 수준인 470㎜에 불과한 나라. 올림픽 타운에서 마시는 물은 ‘시드니 워터’사가 공급하지만 정원수와 화장실용 물은 연못에서 걸러진 빗물(연간 85만㎥)과 오수를 사용하도록 설계됐다.
▼빗물받아 화장실물 사용▼
종이와 포장재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대책은 기본. 종이는 선수명단,최종경기 결과 및 통계 등을 인쇄하는 데만 사용하고 경기정보 뉴스 선수신상명세 기록 등은 모두 전자정보네트워크를 통해 공표하도록 했다. 자동차 배출가스로 인한 대기오염을 막기 위해 자가용 자동차를 위한 주차장은 아예 만들지도 않았다.
조직위는 또 경기 관계자들은 1회용 종이컵 대신 머그컵을 사용토록 하고 올림픽 기간 동안 동전을 대신할 수십만개의 플라스틱 카드는 폴리프로필렌(PP)으로 만들었다.
▼그린피스에선 "60점 불과"▼
이 뿐만이 아니다. 성화를 밝히는 데도 대기를 오염시키지 않는 청정연료를 쓰고 미처 타지 않은 연료가 공기중에 발산되지 않고 회수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세밀한 부분에도 신경을 썼다.
존 보우원 조직위 국제협력 담당은 “환경이 나빠 버림받은 땅에서 환경올림픽을 치른다는게 시드니올림픽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자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최근 “시드니 올림픽 환경 부문에 대한 최종 평가 결과 10점 만점에 6점 정도 밖에 되지 않아 동메달 정도”라고 발표해 잔뜩 기대를 걸었던 조직위 관계자들을 실망시켰다.
VIP 이용 차량(3000대)의 경우 대체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 올림픽 슈퍼돔에 설치한 냉방장치에 오존 파괴물질에 속하는 수소화염화불화탄소(HCFC)가 들어 있다는 것 등이 낮은 점수를 받은 이유. 하지만 환경을 파괴하고서야 건설을 마무리짓는 우리에게 그저 ‘옥의 티’ 정도로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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