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방교수 '한국미술사' 강의
4일 오전, 서울 이화여대 가정관 318호 대형강의실. 30여년간의 박물관 생활을 마치고 이화여대로 자리를 옮긴 미술사학자 강우방교수(59·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의 학부교양강좌 ‘한국미술사’ 첫강의 시간. 수강생이 무려 240여명. 조교에게 미리 전화를 했더니 “강선생님이 오신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학생들의 관심이 부쩍 커졌다”고 귀띔했다.
강교수를 만나 함께 강의실로 향하는 도중.
“수강생이 참 많죠. 그 가운데 누군가가 있습니다. 미술사의 큰 인물이 될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가슴이 얼마나 설레는지….”
강의실로 들어서자마자 강교수는 칠판 앞으로 다가갔다. 분필을 집어들곤 두 단어를 적었다. ‘蓮華(연화)’, ‘龍(용)’. 그리곤 연화문 기와를 정성스레 그렸다.
시작부터가 범상치 않다. 한자에 익숙지 못한 학생들은 자못 긴장하고.
“오늘 강의는 작으면서 무한히 큰 주제로 시작하겠습니다. 바로 연꽃이고 용입니다. 이 둘을 모르면 한국미술과 동양미술을 공부할 수 없습니다.”
한국미술사하면 으레 빗살무늬토기, 청동거울부터 시대순으로 강의하는데, 강교수는 그 통념을 깼다.
“연꽃과 용에는 동양의 세계관이 집약돼어 있습니다.”
의는 핵심을 찌르면서 시작했다. 연화를 설명하면서 최근 경주박물관의 기와특별전의 경험을 풀어놓았다. 박물관 얘기가 현장감을 더해주었다.
강의가 시작된 지 30여분. 아니나 다를까, 휴대폰 소리가 울렸다.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 털어놓는 강교수.
“저는 독문과를 졸업했습니다. 불교미술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가 서른다섯살. 10년을 방황했던 거죠. 한국미술사를 알고 시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강의 중간중간, 세계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신의 세계관이 없으면 미술사를 할 수 없습니다. 한 시대 미술엔 그 시대의 세계관과 철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의 해박함에 걸맞게 강의는 이제 연꽃에서 범종으로 넘어갔다. 갑자기 왠 범종일까.
“성덕대왕신종 표면을 보면 종을 치는 자리에 연화가 장식돼 있습니다. 그 연꽃을 때려야 종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에밀레종소리도 연꽃에서 탄생하는 거죠.”
강의는 철학적이고 미학적이었다. 시대순의 나열식 강의가 아니라 테마별 강의여서 지루하지 않았다.
강의가 끝날 즈음, 강교수는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질문을 하나 던졌다. 일종의 다음주 강의내용 예고다.
“양지를 아시나요. 통일신라의 위대한 조각가 양지. 그가 없었다면 신라 와당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다음 시간엔 양지를 만나보겠습니다.”
박물관 재직시 한국 미술사 연구 수준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받는 강 전관장. 이제 교수로 취임한 그가 박물관 밖에선 어떠한 지적 도전과 학문적 성취를 일궈낼 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