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아흔살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해 ‘황혼이혼’을 사회적 관심사로 만들었던 이모씨(72)가 결국 대법원에서 이겨 이혼을 할 수 있게 됐다.
대법원 민사1부(주심 유지담·柳志潭대법관)는 5일 이씨의 남편 오모씨(92)가 제기한 상고를 기각, 이혼을 허용한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씨는 확정 판결에 따라 합법적으로 이혼함과 동시에 위자료 5000만원과 재산 분할로 현금 3억원, 남편 소유 부동산의 3분의 1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번 판결은 98년 이후 잇따라 제기된 황혼이혼을 인정한 대법원의 첫 판결. 이씨의 소송을 지원한 여성단체들은 “가부장적이고 봉건적인 가치관을 이유로 황혼이혼에 소극적이던 과거 판결에서 진일보해 여성의 인권을 존중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재판부는 “40년간 부부로 생활해 오다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소송을 제기한 원고에게도 책임이 있으나 보다 근본적인 책임은 남편에게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남편의 책임에 대해 △평생을 봉건적이고 권위적인 방식으로 가정을 이끈 점 △96년 한차례 이혼 소동이 있었음에도 계속 억압적으로 자신의 생활 방식을 강요한 점 △부인을 집밖으로 내보낸 뒤 생활비도 주지 않은 점 △부인과의 상의 없이 재산을 일방적으로 장학기금으로 기부한 점 등을 들었다.
이씨는 57년부터 남편과 동거를 시작해 아들을 낳은 뒤 69년 혼인신고를 했지만 순종을 강요하는 남편과 갈등을 겪던 중 94년 남편이 자신을 내쫓은 뒤 생활비조차 주지 않자 96년 서울가정법원에 이혼소송을 내 패소했다.
이씨는 항소심 계류중 남편으로부터 2000만원을 받고 화해했지만 남편이 “반성문을 써오라”고 하는가 하면 97년 평생 모은 부동산(9건 15억원 상당)을 모 대학에 장학금으로 기부하자 다시 이혼소송을 내 1심에서 역시 패소했으나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당시 이씨는 문제의 부동산에 대해 가처분결정을 받아 놨기 때문에 이중 3분의 1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황혼이혼 역시 보통 이혼사건과 마찬가지로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르렀는지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에 따라 판단한다”며 “이번 판결이 황혼이혼을 무조건 받아들인다는 취지는 아니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99년 11월 김모씨(77·여)가 남편 이모씨(85)를 상대로 낸 이혼소송에서 “남편의 부당한 대우가 인정되지만 부부가 고령이고 혼인 당시의 가치 기준과 남녀관계 등을 종합할 때 혼인 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에 이르렀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kyle@donga.com
주요 황혼이혼 사건 판결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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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씨(부인) 사건
김모씨(부인) 사건
대법원
부인승소 확정(2000.9.5)
부인패소 확정(1999.11.26)
항소심
부인승소(1999.8.25)
“남편의 권위적 태도와 억압적이고 일방적인 생활방식 강요, 일방적 재산처분 등으로 결혼관계 파탄”
부인패소(1998.12.30)
“남편도 근검절약했고 의심과 폭행은 질병에 의한 것이어서 부인이 부양할 의무있고 모두 고령인 점 참작”
1심
부인패소(1998.9.10)
“서로의 감정이 다소 상했으나 40년간 부 부생활을 했고 남편은 이혼 원하지 않음”
부인승소(1998.6.25)
“남편의 폭언 폭행과 지나친 의심, 생활비 소액 지급으로 결혼관계 파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