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국제관계를 크게 악화시켰던 대표적 사례로 U2기 사건을 들 수 있다. 1960년 5월 1일 미국의 고공정찰비행기 U2기가 소련 영내에서 추락했다. 미국 정부는 곧바로 추락한 항공기의 임무는 정찰이 아니라 기상관측활동이었다고 둘러댔다. 그러나 체포된 조종사의 진술을 확보한 소련은 “무슨 거짓말을 하느냐”며 미국을 궁지로 몰아넣었고 5월 16일 파리에서 열리기로 예정된 미 소 영 프 4대국 정상회담을 유산시켰다.
이 일을 계기로, 1년 전에 열린 제1차 미소 정상회담으로 개선의 기미를 보였던 두 나라 관계는 급격히 나빠져 2년 뒤에는 쿠바 미사일 위기가 조성되기에 이르렀다.
독일 프랑크푸르트공항에서 일어난 미국 항공사 아메리칸에어라인의 보안검색문제로 말미암은 북한 국가원수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방미 취소, 그리고 거기에 따른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의 정상급 남북회담 취소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보안검색을 둘러싼 쌍방의 설명이 충분하지 않고 진상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현 시점에서 이 문제를 다루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 사건의 외교적 파장이 결코 작지 않은 만큼 북―미 관계의 장래를 위해서나, 남북관계의 앞날을 위해서나 매우 유감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왜 그런 일이 이 시점에서 일어났을까? 매우 조심스럽지만, 국내외에서 제시되는 몇가지 추론을 검토하면서 문제에 접근해볼 수 있겠다. 첫째, 아메리칸에어라인이 미국 정부의 어느 기관으로부터도 사전 연락을 받지 못한 채, 또 북한대표단의 수하물에 관한 아무런 ‘이상’정보도 받은 일이 없는 상태에서 순전히 기계적으로 보안검색 업무에 임했을 경우이다. 아메리칸에어라인쪽에서는 북한 국가원수가 탑승하려 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한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제대로 알리지 않은 북한쪽의 불찰이 문제가 된다.
어떻든 그러한 상태에서, 북한이 미국정부가 지정한 테러리스트국가 명단에 들어있는지라 거기에 걸맞게 철저히 사무적으로 김상임위원장 일행을 다루다가 북한측을 심하게 자극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해도 북한측의 미국 방문 취소 결정은 지나친 것이 아니었느냐는 반론이 나올 수는 있다.
둘째, 아메리칸에어라인이나 미국의 정보기관이 북한대표단의 수하물에 관해 ‘이상’정보를 입수한 경우이다. 그 정보가 신뢰성이 높은 것이었다면 적절한 절차를 취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실제로 북한은 외교관들이 면책특권을 활용해 밀수에 종사한 기록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국가원수에 해당하는 사람의 수행원들이 어떤 ‘이상한’ 물건을 운반하려고 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성립될 수 없는 가정이다. 북한의 지난날의 기록이 어떠했든, 특히 미국이 자신에게 씌운 테러불량국가라는 모자를 벗겨주기를 바라는 시점에서, 미국으로 입국하는 비행기편을 ‘악용’하려 했다고 생각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셋째, 그렇다면 우리 사회 일각에서 조용히 거론되는 ‘미국 음모’의 산물일까? ‘미국 음모론’에 따르면, 미국은 남북관계의 진전을 겉으로는 환영한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꺼린다고 한다. 미국은 한반도 상황이 긴장완화와 화해 쪽으로 치달려 미군 주둔의 명분이 약해지고 궁극적으로 한미군사동맹의 해체로까지 가게 될 경우 자국의 태평양전략에 중대한 타격을 주게 될 것임을 경계한다는 것이다.
남과 북은 밀레니엄정상회의에서 민족적 협력을 다짐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낼 계획을 갖고 있었다. 이 시나리오대로 갈 경우 남북관계의 진전방향과 속도에 대한 미국의 통제력은 비록 부분적이나마 힘을 잃게 된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보안검색을 명분 삼아 북한대표단에 모욕을 가해 그렇지 않아도 미국에 대해 불만이 많은 북한이 스스로 방문을 취소하게끔 유도했으리라고 음모론은 의심한다. 이 시나리오는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또 그렇게 믿을 만한 구체적인 증거가 현재로서는 제시되어 있지 않다.
진상은 앞으로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을 수 있다. 우리로서는 무엇보다 진상파악에 힘써야 할 것이며, 거기에 따라 우리의 대북한 인식, 대미인식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평화통일로 가는 길은 매우 험난하다는 평범한 교훈을 이번 일이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어떻든 서로 오해가 있었다면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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