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위해 신에게서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의 운명을 무릅쓰고 저는 우리가 우주를 이해할 수 있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지난 29일 방한한 뒤 잇달아 강연을 해 온 스티븐 호킹 교수(58·케임브리지대학)의 말에서는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그리스 신화 속의 프로메테우스는 하늘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는 이유로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는 가혹한 형벌을 받았던 인물. 비록 육성이 아니라 컴퓨터 장치에서 나오는 음성이었지만, 반평생 이상을 휠체어에 몸을 맡긴 채 우주와 이론물리 연구에 몰두해 온 그의 학문적 열정은 강연 곳곳에서 발견됐다.
청와대에서 행한 강연에서 호킹 교수는 특히 자유로운 정신과 끊임없는 도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인간은 물리적으로 매우 많은 제약을 받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만큼은 자유롭게 우주 전체를 탐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우주와 우주의 기원을 이해하는 것이 설령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라 해도 최소한 이해해 보려는 시도는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의 이런 몸부림은 생활 속에도 투영돼 있다. 3년반 동안 그를 돌보아 온 간호사 자퀴 오델(53)씨는 “호킹 교수의 몸은 갓난아기와 같이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상태지만 그의 연구 열의는 놀라울 정도”라고 귀뜸했다.
그는 대중 강연가로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우주론을 기발한 제목(The Universe in a Nutshell)으로 요약했다. 제목의 in a nutshell은 관용구로 ‘한마디로 줄인’의 의미다. 즉 우주를 간략히 설명하겠다는 것. 그러나 글자 그대로 호두껍질 속의 우주라는 의미도 있다. 그럼 그는 왜 호두껍질 속의 우주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
현재의 표준적인 우주생성모델인 대폭발(빅뱅) 이론이 전제하고 있는 최초의 한 점, 즉 특이점에서는 그 어떤 물리법칙도 적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는 ‘허수의 시간’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이 특이점을 피하려고 시도해 왔다.
그 결과 한편으로는 우주에 처음이나 끝을 나타내는 시간적 경계가 없고 또 공간적 부피는 있되 경계가 없다는 ‘무경계 우주’와 다른 한편으로는 허수 시간으로 본 우주가 마치 호두껍질처럼 구 모양을 하고 있다는 새로운 생각에 이른 것이다.
‘미래의 과학’을 주제로 한 서울대 강연에서 그는 “상식이란 우리가 자라면서 익숙해진 편견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며 상식을 깨는 이 새로운 이론이 머지 않아 완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실험을 통한 검증은 불가능하지만 수학에 의존해 우주의 기본 법칙에 관한 완전한 이론을 찾아 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호두껍질 안에 갇혀 있으면서도 우리 자신을 무한한 공간의 왕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휠체어에 갇혀 있으면서도 무한한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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