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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주문이 많은 요리점…잔잔한 자연사랑

입력 | 2000-09-08 18:33:00


어렸을 때 본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는 어린 나에게 죽음, 슬픔, 우주의 신비로움, 사랑 등등 뭐라 설명하기 힘든 느낌을 던져 주었다. 그 영화의 원작이 동화이며, 그 동화를 쓴 작가는 일본의 미야자와 겐지라는 걸 알게 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 뒤였다.

재작년에 서점에서 앞사람이 같은 책을 두 권이나 사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산 책이 있다. 그 책 제목은 ‘자연 음악’이다. 나무와 풀과 꽃과 바람 등 자연이 부르는 음악을 듣고 그 음악을 연주 녹음하여 병자들에게 들려주어 병을 치유하는 내용이 실린 책이다. 그 책의 편저자인 리라연구그룹 자연음악연구소는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 낭독을 즐기는 동호회에서 출발한 자원 봉사 그룹이었다. ‘도대체 미야자와 겐지가 어떤 작가이기에 그 동호회가 자연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궁금증이 일었다. 하지만 겐지의 작품을 찾아 읽을 정도로 부지런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게으른 내게 최근 그의 동화집 ‘주문이 많은 요리점’을 읽을 기회가 주어졌다. 내심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왜 그의 숭배자들이 자연 음악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의 작품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과 인간의 동반자적인 관계를 강조하고 있었다.

‘첼리스트 고오슈’는 열등감과 절망감에 사로잡혀 난폭하게 굴던 젊은 첼리스트가 동물들의 도움으로 자신도 모르게 훌륭한 음악 연주를 하게 된다는 짧은 이야기이다. 사실 고오슈는 자기가 동물들의 도움을 받는지 조차 몰랐다. 겸손한 동물들이 그에게 갖가지 이유를 들어 제발 연주를 들려 달라고 간청을 하였기 때문이다. ‘겐쥬 공원숲’에서 소년 겐쥬를 다른 사람들은 멍청이라고 부른다.

바람이 불어 너도밤나무 잎이 반짝일 때면 기뻐 어쩔 줄 몰라 ‘하아 하아’ 웃는 겐쥬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겐쥬는 자기가 심은 삼나무들의 가지치기를 해 주고 나서는 가슴이 미어져 괴로워하는 아이다. 결국 겐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삼나무 숲을 가꾸어 낸다.

작은 생명이라도 소중히 여기는 불교적 색채가 느껴지는 그의 동화는 자연스럽게 반전(反戰) 의식을 다루고 있다. ‘까마귀의 북두칠성’의 까마귀 대위는 전투에서 큰공을 세우고 나서도 ‘미워할 수 없는 적을 죽이지 않아도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가 작품을 쓰던 시기는 일본 군국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아마도 그의 생명 존중 의식, 반전 의식, 신비주의적인 경향은 그 당시 분위기에 비추어 보아서 별로 환영을 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 서양의 판타지 동화와는 다른 환상 세계를 펼쳐 보이며 동서양의 많은 어린이와 어른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집 한권을 더 소개하고 싶다. 논장출판사에서 나온 ‘늑대 숲, 소쿠리 숲, 도둑 숲’. 사람과 숲의 원시적인 교섭, 진정한 인간성의 탐구 등을 겐지 특유의 시적인 문체로 묘사한, 감동적인 동화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밤이 되어도 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 오늘 따라 별 하나 또렷이 보이지 않는 밤하늘이 왜 이렇게 답답하게 느껴지는 걸까? 민영 옮김. 176쪽, 6000원.

여 윤 희(주부·30·경기도 고양시 화정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