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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인북]'내정간섭' 국가간 불평등 해소법

입력 | 2000-09-08 18:57:00


우정어린 충고부터 광기 서린 침공까지 국가 간 불평등의 형태는 몇 개의 폴더로 묶기에는 너무 많고 다양하다. 여기에 보편을 가장한 주관(도덕적 명령)이 개재되면 우정과 광기는 야만으로, 충고와 침공은 대량학살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냉전종식 후 전혀 새로운 국제관계를 경험하는 듯한 착시감에 도취된 인류는 잠시 잠복해 있었을 뿐인 국제적 갈등의 분출에 직면해 보편적 가치선언 대한 허기를 ‘인도주의적 개입’으로 채우면서 국가 간 불평등을 여전히 묵인하고 있다.

사실 국내사회에서는 불평등이 무질서의 근원이지만, 근대의 국제정치학은 오히려 평등이 무질서의 근원이라고 가르친다. 제국과 패권, 양극과 다극 같은 냉전시대 국제정치 용어의 무의식 영역에는 ‘불평등’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제 민주주의의 확산, 보편적 인권의 구호가 범람하는 21세기의 자유민주주의 세계도 여전히 국가 간의 불평등관계 속에서 유지되고 있다.

주권국가 간 불평등관계가 원시적인 방법이든 혹은 문명적인 방법이든 행위양식으로 표출될 때 과거에 우리는 그것을 제국주의 또는 침략이라고 불렀고, 오늘날 드파르주는 그것을 ‘내정간섭’(원제 ‘간섭의 세계’)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자율과 자조 이외에는 공통의 규범이 존재하지 않고, 그에 따라 힘에 의한 보편적 가치가 강요돼 온 국제관계를 역사적으로 조망하다 보면 현실주의적 냉소주의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드파르주는 현실주의를 비판하되 세계공동체를 열망하는 이상주의에 함몰되지 않고 있다. 그는 생존과 발전, 공공선을 위한 내정간섭의 필요성과 조건을 모색하면서 상호비판과 견제가 가능한 조건 속에서의 국가 국제기구 NGO의 간섭을 긍정적으로 포용한다. 그리고 주권과 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모순된 개념으로 점철된 위험한 세계에서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정치를 윤리로 대체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서로의 발전과 비판, 간섭의 상호성을 전제로 한 것이라면 그것은 간섭이 아니라 애정표현이 아니겠는가?

옮긴이가 국제기구의 명칭 등에 프랑스어 약자를 사용하는 등 한국의 일상적인 사회과학 용어의 탐색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듯하긴 하지만 가독성에 치명적인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내정간섭' / 필립 모로 드파르주 지음/ 문경자 옮김/ 한울/ 180쪽, 1만4000원▼

이웅현(고려대학교 대학원 연구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