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맞는 올 추석 보름달은 유난히 더 크고 둥글 것이라고 믿습니다.”
다들 선물 꾸러미를 풀면서 가족간의 정을 나누고 있을 때 기름때 묻은 장갑을 끼고 땀 흘려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납기를 맞추느라 공장을 멈출 수 없는 업체의 근로자들은 추석 연휴도 잊고 산업 현장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땀 흘리는 이들에게 추석은 진짜 ‘결실의 시간’이다.
인천 남동공단 내 한국단자공업 생산과의 양재현씨(33)는 며칠 전 고향(충청도)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올해는 공장 일이 바빠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오랜만에 어깨라도 주물러드리고 싶었는데…. 회사일이 워낙 바빠서요.”
추석 비상 근무조에 편성된 양씨는 추석날인 12일 하루만 쉬고 계속 출근해야 한다. 전자 가전기기 통신기기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양씨의 회사는 작년보다 일감이 30% 가량 늘었다. 주로 유럽 미주 등으로 수출하고 있어 납기를 맞추려면 명절이라도 쉴 여유가 없다. 작년에는 주문 물량이 그리 많지 않아서 연휴를 다 쉬었지만 올해는 직원의 3분의 1 가량이 연휴기간에 ‘정상 근무’한다. 회사 직원들은 매년 10월 초에 갖는 체육대회도 “올해는 일이 많으니까 내년초로 미루자”고 말할 정도다.
구로공단 대동전자의 일부 직원들에게도 올해 추석은 없다. 카메라 캠코더 등 전자 제품의 금형(틀)제작 업체인 대동전자의 사출기도 추석 연휴 기간에 쉬지 않고 돌아간다. 일본 소니사에 물건을 납품하는 이 업체는 주문 물량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어 공장을 계속 돌려야 한다. 남동공단과 구로공단 내에 이처럼 이번 추석 연휴를 쉴 수 없는 크고 작은 기업은 줄잡아 90여개.
이들이라고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려움을 이겨낸 회사를 생각하면 다행스럽고 부모님에게도 오히려 자랑거리이다. 이들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잘 넘기고 이제 주문량이 밀리는 것을 보면 고향에 못가도 마음만큼은 풍성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아구스(26)에게 올해 추석은 한국에 와서 두 번째 맞는 명절. 1년전부터 시화공단의 동진화성공업에서 외국인 연수생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한국인 직원 몇 명과 함께 연휴 4일간 공장을 지키게 돼 있다. 그는아직 한국인의 추석이 어떤 날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한국인 친구들이 “부모님을 뵈러 간다”면서 떠나는 것을 보니 새삼 마음이 착잡해진다고 한다.
“얼른 고향으로 돌아가서 어머니 아버지 모시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그러자면 더 열심히 기술을 배워야죠.” 서툰 우리말로 웃는 표정을 짓지만 얼굴에서 고향 생각은 지울 수 없다.
“부모님,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부모님과 우리가족을 위해서요.”고향은 달라도, 또 국적은 달라도 일터에 남은 이들이 고향에 띄우는 ‘추석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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