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천외한 ‘샤워 점화’. 점화자는 호주원주민 출신 여자육상스타 캐시 프리먼.
성화대를 향한 계단 마지막 지점. 인공 원형 풀 한가운데에 선 프리먼이 물 위로 성화를 내리자 성화는 붉은 불꽃원을 그린 뒤 서서히 공중으로 올라갔다.
비행접시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성화대는 폭포수 같은 물을 쏟으며 공중으로 솟구쳐 칠흑 같은 시드니의 밤하늘을 밝혔다.
‘여성의 올림픽출전 100주년’을 맞아 성화 점화자로 나선 호주의 육상 스타 프리먼은 시드니올림픽이 화두로 내세운 ‘여성 해방’의 상징이었다. 프리먼은 97, 99세계선수권을 연속 제패했고 이번 올림픽에서도 강력한 우승후보. 프리먼은 각종 국제대회 때마다 호주국기와 함께 호주원주민인 ‘애보리진’ 깃발을 들어왔다.
평소 소수 인종 권익 보호를 부르짖었던 프리먼이 점화자로 나선 것은 이 세상 모든 불평등과 억압에 항거하는 몸부림이었다.
전세계 인구 중 아직도 스포츠 무대에 나설 수 없는 여성은 무려 5억명. 아프가니스탄은 여성 차별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올림픽 출전을 금지당했고 92바르셀로나올림픽 때 육상 1500m에서 조국 알제리에 사상 첫 금메달을 바쳤던 하시바 보울메르카는 전세계 남성 앞에 다리를 내놨다는 이유로 살해위협에 시달리던 중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날 60년 로마올림픽 남자육상 1500m 금메달리스트인 허브 엘리엇에 의해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 들어선 성화는 이후 5명의 역대 호주 ‘금빛 소녀’를 거쳐 프리먼에게 마지막으로 건네져 스타디움 입장에서 점화까지의 성화 릴레이가 모두 여성에 의해 이뤄지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56멜버른, 64도쿄올림픽 육상에서 금메달 4개를 따냈던 베티 쿠스버트가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첫 주자로 나섰고 68멕시코, 72뮌헨올림픽 육상에서 3개의 은메달을 목에 걸었던 라엘린 보일, 39개의 세계기록과 각각 4개의 금, 은메달을 목에 건 수영스타 돈 프레이저, 48런던올림픽부터 56멜버른올림픽까지 육상에서 금3, 은1, 동3개를 따냈던 셜리 스트릭랜드, 72뮌헨올림픽 수영 3관왕 셰인 굴드가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