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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삼윤의 문명과 디자인]모로코 메디나와 맨해튼

입력 | 2000-09-17 19:01:00

▲페스의 가리윈 모스크


8세기말에 건설된 페스는 13∼20세기초 모로코 왕국의 수도로서 정치, 경제, 문화, 학문의 중심지로 활약했던 ‘메디나’였다. ‘메디나(medina)’란 아랍어로 도시를 일컫는 일반명사. 그런데도 이슬람 도시를 ‘시티’라 부르지 않고 굳이 메디나로 달리 부르는 것은 거기엔 이슬람의 전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메디나의 중심에는 모스크가 있다. 중세 유럽도시에서의 성당의 기능을 이곳에선 모스크가 해내고 있는 것이다. 주위에는 성당과는 달리 이슬람의 종교학교인 마드레사와 세계 각지로부터 흘러들어온 상품들이 거래되는 수크(시장), 캐라반 세라이(캐라반 상인들의 숙소), 함맘(공중욕탕) 등이 자리잡고 있다. 또 일반 주택과 가게는 사람과 나귀가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골목에 줄지어 있다. 외곽에는 도시를 지키는 두터운 성벽이 지난다.

페스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든 구시가 메디나의 인구는 약 20만명(도시 전체는 100만명)으로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인구밀도가 높은 곳.

▲ 메디나의 가장 큰 특징은 좁은 골목

▲ 뉴욕의 맨해튼은 단단한 바위 지반만 갖고도 얼마든지 메가로폴리스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메디나의 정문인 ‘밥 부제로드’ 앞을 지나려는데 한 청년이 다가와 “안내자 없이 메디나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오늘 중으로 나오기는 어려울 겁니다”라며 자신을 안내자로 쓰는 게 좋을 것이라고 반(半)협박했다. 할 수 없이 안내인으로 세웠다.

정문을 지나자 햇볕에 구운 흙벽돌로 지은 집들 사이로 비좁기로 유명한 골목이 나왔다. 정말 좁았다. 고불고불한 데다 바닥마저 울퉁불퉁했다. 그것도 모자라서인지 도처에 계단이 버티고 있고 지붕이 덮인 골목을 지날 때면 어디가 어디인지 도통 분간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그 좁은 골목에 채소와 과일, 악세사리, 옷가지, 심지어 닭까지 끌고 나와 마치 시장거리를 방불케 했다.

나는 골목을 좁게 만든 이유에 대해 안내인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대답했다.

“첫째는 좁은 오아시스를 최대한 이용하자는 것이었고 다음은 외적이 침입하더라도 쉽게 도시 내부로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셋째로는 이웃과 공간적으로 가깝게해 심정적으로도 가까운 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이었고 마지막으로 골목에 그늘을 만들어 뜨거운 햇빛을 피해 이동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죠.”

우리는 그런 골목을 여러 개 지나 메디나의 중심인 가라윈모스크 앞에 이르렀다. 이 역시 좁은 골목을 끼고 있어 그 정면을 카메라에 담을 수도 전경을 조망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내부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슬람 신도가 아닌 사람은 절대 출입 금지라는 것. 안내인 친구는 나에게 가라윈이 어떤 곳인가를 설명해줬다.

“페스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가라윈모스크는 메디나의 정신과 문화의 중심지입니다. 이슬람도시가 모스크를 중심에 둔 것은 종교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학문을 중시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중세유럽의 수도원과 같은 역할을 모스크가 한 것이죠. 가라윈모스크는 대학의 기능을 수행했고 또 주위에는 몇 개의 종교학교도 있어 이를 잘 말해줍니다. 중세 이슬람의 과학과 수학, 의학의 수준은 당시 유럽을 앞섰습니다. 그중에서도 바그다드에 도읍한 아바시드 왕조의 알 하룬 왕이 피라미드 내부를 조사하기 위해 학자를 파견해 그 내부통로를 발견한 것은 아주 유명하죠. 모스크의 내부 장식은 안달루시아 스타일이나 스페인의 알람브라 궁전을 떠올리면 될 것입니다.”

메디나의 원형을 보여주는 페스는 사막 속에서 상업을 중심으로 발전한 도시라 농경문화권의 도시와는 다른 구조와 기능을 보여주고 있지만 강을 끼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과일과 야채를 재배하고 식수를 구하기 위해서는 물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이같은 조건은 19세기까지만 해도 도시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런데 세계 최대의 도시인 뉴욕은 그렇게 시작되지 않았다. 아예 그런 상식을 깨버리면서 출발했다.

그 중심이 되고 있는 맨하탄이 강이 아닌 바다를 끼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곳은 식물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흙 대신 단단한 바위만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도시를 세운 사람들은 ‘뉴 암스테르담’이란 옛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농사가 아니라 암스테르담 같은 무역항을 세우려 했던 것이다. 방파제를 대신할 단단한 바위는 이상적인 조건이었다. 그러나 그 진가는 철골구조가 등장한 20세기에 들어와서 발휘되었다. 100층 가까운 마천루들을 대거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이 또한 단단한 지반 덕분이었다. 고작 5, 6층 정도의 지하구조로 100층을 거뜬히 세웠으니까 얼마나 경제적이었겠는가.

맨해튼과 같이 기존의 도시입지조건을 완전히 뒤바꾼 대표적 사례로는 또 실리콘 밸리가 있다. 건조한 이곳은 건조함이 요구되는 반도체라는 특수소재와 만나면서 새로운 변신에 성공했던 것이다. 새로운 공간 창조는 늘 새로운 가능성으로 연결돼 왔음을 도시의 역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권삼윤(문명비평가)tumida@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