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17일 발표한 공기업 구조조정 실태 감사 결과는 공기업이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에도 여전히 고통분담의 사각지대로 남아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즉 일반 국민이 정리해고 임금삭감 등뼈아픈 고통을 감내하는동안 공기업들은 누적적자에 허덕이면서도 정부의 재정지원을 등에 업고 편법 임금인상 등을 통해 내 몸 살찌우기에 급급해온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141개 감사대상 공기업 중 9개를 제외한132개 공기업이 모두 788건의 위법 부당사항을 지적받을 정도로 경영이 방만했던 것은 정부 부처의 ‘구조조정 압력’이나 관리 감독이 별로 효과가 없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감사원 관계자는 “공기업들이 주인이 없다는 이유로 구조조정 등 미래의 생존을 위한 대비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방만경영의 유형별 사례.》
▼적자기업 존속▼
한국종합화학은 98년 남해화학이 민영화되면서 목포 대불공단의 수산화 알루미늄 공장만이 남게 됐다. 그러나 수돗물 정제 및 화장품 원료로 쓰이는 수산화알루미늄은 80년대 말부터 세계적으로 공급과잉 상태인데다 생산규모마저 비경제적이어서 96년부터 4년간 한국종합화학의 매출액은 555억원에 불과했다. 이는 생산원가(804억원)에도 훨씬 못미치는 액수여서 한국종합화학은 이 기간 149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결국 공장을 가동할수록 적자만 쌓이는데 여전히 공장이 가동되고 있다는 게 감사원의 지적이다.
대한석탄공사와 대한광업진흥공사는 석탄산업 등 광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존립 근거를 상실한 상태인데도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석탄공사의 경우 99년 말 현재 자본잠식액(채무초과액)이 1531억원에 이르며, 매년 800억원의 적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석탄산업합리화사업단은 당초 2001년 말 해산하기로 정부와 합의해 놓고도 태백 카지노사업 출자 및 광해(鑛害) 방지사업 진출 등을 이유로 2005년까지 존치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감사원은 업무가 중복되는 이들 3개 기관을 통폐합, 일원화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할 것을 권고했다. 또 한국외환은행은 환은호주금융㈜ 등 3개 현지법인과 런던지점 등 12개 지점이 99년말 현재 9774억여원의 무수익여신을 보유하는 등 부실채권비율이 11∼58% 수준(국내 시중은행은 평균 6%)인데도 구조조정을 소홀히 하고 있다.
▼인력감축 외면▼
건설교통부 산하 도로공사 주택공사 수자원공사 토지공사가 각각 자회사로 운영하던 감리공단들을 통합해 설립한 ㈜한국건설관리공사는 수주물량 감소로 99년 4월 이후 109∼138명의 유휴인력이 생겼는데도 재택근무 또는 보직대기 발령을 내 32억원의 인건비를 지급했다.
올해초 출범한 농업기반공사는 8개 지사와 86개 시 군지부를 운영하면서 지사장, 지부장과 같은 직급의 부지사장, 부지부장 자리를 두는 등 조직을 방만하게 운영해오다 감사원 지적을 받고 80여명을 감축했다.
▼직원 돈잔치…규정에 없는 성과급 지급▼
한국마사회는 차량운전 시설관리 등 분야의 기능직을 채용 관리하면서 일반직과 같은 등급 및 호봉체계를 인정해 지나친 고임금 체계를 유지했다. 99년의 경우 전체 직원의 42%를 차지하는 기능직 301명의 1인당 인건비는 3300만원이었다. 연봉이 6100만원인 운전사와 연봉이 4300만원인 사무보조원도 있었다.
한국마사회는 또 올해초 서생현(徐生鉉)회장이 취임하는 과정에서 97년 문화관광부의 제동으로 지급하지 못한 임금인상분 37억여원을 체불임금 청산 명목으로 지급했다.
포항제철 등 14개 기관은 97년부터 올해까지 특별성과급 특별격려금 보로금 등의 명목으로 임직원에게 444억여원을 지급했다. 이는 성과급 지급기준을 초과하거나 아무런 구체적 근거 없이 지급된 것.
▼마구잡이식 기금 출연▼
대한주택보증㈜ 등 5개 기관은 96년 이후 4년간 총 3조4442억여원의 적자를 냈으면서도 56억여원의 사내근로복지기금을 출연했다. 한국감정원 한국도로공사 한국주택은행 등 36개 기관은 97∼99년 적정 출연기준액을 초과, 1572억원을 과다 출연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전기통신공사는 노사합의를 통해 기업의 수익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99∼2004년 매년 500억원씩 총 3000억원을 출연키로 했으며 한국전력기술㈜은 99년부터 5년간 세전순이익의 20%를 출연키로 했다.
▼퇴직금 누진제 고수…30년 근무자 퇴직금 5억▼
정부는 98년 ‘공공기관 퇴직금제도 개선방안’을 마련, 같은해 12월까지 퇴직금 누진제를 폐지하도록 지시했고 이에 따라 141개 공기업 중 87곳은 누진제를 없앴으나 국민은행 주택은행 서울은행 등 40개 기관은 아직 이를 존속시키고 있어 형평성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대한주택공사 한국관광공사 한국담배인삼공사 등 20개 기관은 누진제를 정부 기준일(98년12월31일)보다 늦게 폐지, 6767억여원의 퇴직금을 추가부담한 것으로 추산됐다.
한국수자원공사의 경우 7월 퇴직금을 중간정산하면서 기준급여인 월봉에 중식보조비 등을 포함시켜 139억원을 과다책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 관계자는 “30년4개월을 근무한 사람이 4억7800만원을 받는 등 28∼30년 근무자들의 퇴직금이 4억5000만원을 넘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한국전력공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한국방송광고공사 등 28개 기관은 누진제를 폐지하는 대신 임금 또는 복리후생비를 인상하거나 사내근로복지기금 출연을 약속하는 등의 편법으로 퇴직금 감소분을 보전해줬다.
▼성공사례…남해화학-기술금융 경영개선▼
남해화학은 민영화 결과 97년 부채비율 92%, 순이익 34억원에서 99년 부채비율 55%, 순이익 505억원으로 재정이 개선됐다. 한국종합기술금융도 부채비율은 97년 1592%에서 99년 298%로 크게 줄고, 순이익은 97년 24억원에서 올해 6월 현재 2021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수자원기술공단은 공공기관 중 퇴직금 누진제를 처음 폐지하고 정원의 24%(132명)를 감축함으로써 구조조정 모범기관으로 꼽혔다.
감사 결과 현 정부 들어 2년간의 공기업 구조조정으로 11개 기관이 민영화되고 8개 기관이 통폐합됐으며 3만4000여명의 인력이 감축된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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