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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성토장된 '유학박람회'…"한국교육 미래없다"

입력 | 2000-09-18 19:08:00


“왜 편법으로 자식을 유학 보내느냐고요? 국내 학교에서 아이들의 미래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16, 17일 이틀간 열린 제11회 해외 유학 어학 박람회장은 초중고교생 자녀를 동반한 학부모들의 행렬로 줄을 이었다.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병들이 대부분이던 예년과 크게 다른 모습.

200여 참여단체가 내놓은 ‘조기유학상품’을 둘러보던 참가자들에게 조기 유학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를 묻자 대부분이 한국의 교육 현실에 대해 성토했다.

중학교 1, 3년생 두 딸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려는 주부 신모씨(41·경기 안산시 사동)는 “촌지를 요구하는 교사들에게 실망했으며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딸들의 성화에 못이겨 유학을 생각하게 됐다”면서 “딸들이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부모된 도리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올 2월 고교 1년생 딸을 캐나다로 유학 보낸 주부 김모씨(42·서울 강남구 압구정동)는 “딸이 기술 가정 도덕 등 관심 없는 과목까지 밤 늦게까지 달달 외워야 하는 학교가 싫다고 고집을 부려 유학 보냈다”며 “미국 고교로 전학시키기 위해 이 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고교 1년생 이모군(15·경기 광명시)은 “생명공학자가 꿈인데 학교에서는 졸고 학원에서는 대학가는 요령을 배우면서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학부모와 학생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면서 초중학생 조기 유학을 금지한 교육부에 대해서도 불만을 털어놓았다.

중학교 1년생 아들을 둔 회사원 황모씨(40·경기 고양시 일산구 주엽동)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있는 사람은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 아니냐”면서 “‘자립형 사립고’ 등 다양한 학교가 있으면 어린 자녀를 억지로 유학 보내려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학교 3년생 자녀를 둔 공무원 김모씨도 “정부가 공교육에 대한 투자를 너무 소홀히 한다”며 “많은 학생들이 외국으로 나가면 의무교육이어야 할 초중고교 과정을 결과적으로 선진국에 내주는 꼴이 아니냐”고 말했다.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