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블랙 먼데이’였다. 태풍 사오마이가 지나간 가을 하늘은 더없이 청명했지만 증권가에선 한숨소리만 가득했다. 증권거래소와 코스닥 시장이 바닥을 모르고 동반 대폭락한 18일 투자자들도, 증권사 직원들도 모두 할말을 잃었다.
이날 주가하락으로 거래소 시장과 코스닥시장의 시가총액은 각각 17조6950억원과 5조500억원씩 감소, 하루만에 모두 22조7450억원의 돈이 허공으로 날아가버린 것이다.
○…오전 9시 장이 열리면서부터 급락세로 출발한 이날 객장은 ‘침묵과 비탄’ 그 자체. 주부 투자자가 많은 증권사 지점에서는 아침부터 ‘한국 경제가 다 망한 거냐’ ‘회생 가능성이 없는 거냐’는 등 투자자들의 질문이 쏟아져 직원들이 진땀을 빼기도. LG투자증권 장병국 상계지점장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영업장에서 설명회를 열어달라는 요청까지 있었다”면서 “하지만 수급 상황을 볼 때 당분간 뾰족한 대안이 없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주로 직장인 고객이 많은 서울 여의도나 시청 근처의 증권사 지점에는 객장을 찾은 투자자가 거의 없어 썰렁한 모습. 삼성증권 태평로지점 심성훈 과장은 “오늘처럼 ‘투매’에 가까운 날은 팔고 싶어도 팔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투자자들도 알기 때문에 문의 전화조차 거의 없었다”고 소개.
○…인터넷 증권사이트인 팍스넷 아이낸스 등에는 장이 열리면서부터 개인 투자자들의 체념과 정부 등에 대한 비난의 글이 쏟아졌다. 한 투자자는 “우리 민초들은 욕심도 내지 않고 은행 이자보다 조금 나으면 된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주식 투자한 죄밖에 없는데 이렇게 무식하게 주가가 떨어지는 나라는 아마 없을 것”이라고 정부를 비난. ‘한심’이라는 투자자는 “경제위기가 다시 오고 있다는 여러 경고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북한에 아부하기에 바쁘다”면서 “경제가 망한 뒤에 남북관계 개선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공격. 이밖에 “오늘부터 자동차 경적시위를 벌이자”거나 “모두 조기를 게양합시다. 가슴에 검은 띠를 답시다”라는 등 집단 행동을 제의하는 글이 눈에 띄기도.
○…포드의 대우차 인수 포기가 주가 폭락의 결정타로 지목되면서 포드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의 글도 있었는데 한 투자자는 “포드는 대우차를 살 생각도 없으면서 한국 자동차 산업을 초토화시키려고 시간을 질질 끌었다”면서 “이 같은 의도를 몰랐던 정부 담당자들이 한심하다”고 꼬집기도.
○…이날 재정경제부 등 일부 경제부처 장관실은 투자자들의 항의 전화로 한바탕 몸살. 재경부 장관실에는 5∼10분 간격으로 이어지는 투자자들의 항의성 전화에 비서실 직원들은 업무가 거의 마비될 지경. 비서실 관계자는 “주가가 많이 떨어진 날은 하루에 40∼50통의 전화가 오는 데 오늘은 다를 때보다 훨씬 많았다”면서 “주가가 떨어져 남편한테 쫓겨나게 생겼다는 식의 한풀이성 전화도 많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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