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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박희제/'노약자 지정석' 묘안 없나

입력 | 2000-09-20 18:34:00


“당신 노인 아니지. 얼른 일어나.”

“저도 아이엄마인데 너무 심하게 반말하시는 거 아니에요?”

최근 서울지하철 2호선 객차 안 ‘노약자 지정석’ 앞. 60대 노신사가 좌석에 앉아 있던 30대 주부와 짧은 언쟁을 벌였다.

보기에 민망하고 어색한 이같은 해프닝이 지하철 안에서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앉아서 잠자는 척하는 젊은이, 이들을 건드려 깨우는 노인, 삿대질까지 오가는 살벌한 말다툼….

얼마 전엔 좌석을 양보하지 않았다고 나무란 노인을 중학생이 계단에서 걷어차 숨지게 한 사건까지 일어났다. 이 사건 이후 서울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지하철공사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는 노약자 지정석을 둘러싼 의견이 하루에도 수십통씩 올라오고 있다.

한 젊은이는 ‘작지만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지하철 수난 중에 1순위가 성추행이라면 그 다음이 노인들로부터 당하는 무참한 공격이다. 가정교육을 잘못 받은자식으로 매도당하는 인격모독의 상황을 만드는 데 노약자석이 한몫을 한다”고 썼다.

74세의 한 노인은 젊은이에게 자리양보를 요청했다가 봉변을 당했다며 “노약자 지정석을 없애거나 여기 앉은 젊은이들을 경범죄로 처벌하는 등의 근본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은 서울만 하루 520만명. 전국적으로 따지면 이보다 훨씬 많다. 자리를 둘러싼 이같은 실랑이가 잦으면 도시의 하루는 더욱 삭막해질 수밖에 없다.

캐나다나 유럽 일부 국가의 경우 버스와 지하철의 노약자 좌석에는 일반인들이 아예 앉지 못하도록 한다. 젊은이들은 지정석이 비어 있더라도 절대 앉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노약자석에 젊은이가 앉아 있다고 호통치는 노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지하철공사 관계자는 “노약자 지정석에 앉았다고 범법자로 다룰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좀더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박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