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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문화 캠페인]고사리손 정성이 '큰강'된다

입력 | 2000-09-21 19:13:00


8월 어느 날, 자동차 모양의 저금통을 든 안재서군(4)이 아버지 안경환(安京煥·서울대 법학)교수의 손을 잡고 참여연대 사무실에 들어섰다. 동전 하나 더 들어갈 틈이 없는 저금통은 안군이 평소 어른들로부터 받은 용돈을 저축한 것. “이 돈을 엄마 아빠 없는 아이들에게 전달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안군은 ‘전 재산’을 기부했다.

나눔의 삶, 기부문화는 고사리 손 어린이들이 더 빨리 배우고 있다. 이들의 기부활동은 누굴 위해 베푼다거나 희생한다는 의식 없이 ‘스스로 도움이 되고 도움을 얻는’ 분위기에서 이뤄진다는 게 특징.

모금기관인 월드비전(구 선명회)이 지난해 결식아동과 북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전개한 ‘사랑의 빵’ 캠페인 결과도 그랬다. 원생이 100여명도 안되는 유치원 당 평균 모금액이 수백명의 학생이 있는 초중고교와 비슷한 액수였다.

서울 중랑구 신내동 소재 영은유치원의 교육프로그램 중 하나는 어려운 친구들을 위한 저금통 채우기다. 지난해 한 모금기관의 ‘사랑의 빵’ 모금운동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아예 고정 프로그램으로 정착시켰다. 요즘 유치원생들이 채우고 있는 저금통은 이웃사랑회의 결식아동을 돕기 위한 모금용이다.

이 유치원 김영은(金英恩)원장은 “기부체험이 대단한 교육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어려운 친구들을 돕기 위해 한 푼 두 푼 모으는 과정에서 절약정신을 배우며 성장한다는 것. 배가 고파 고통받는 친구들의 모습을 본 뒤 어린이들의 편식습관이 고쳐지기도 한다. 기부체험의 교육효과를 높이기 위해 모금기관이나 유치원 차원에서도 많은 준비를 한다.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할 수 있게 어린이극과 비디오 등을 보여주고 가정통신문을 보내 심부름하거나 착한 일을 할 때마다 100원, 50원씩 받은 동전을 모으게 한다.

지난해 연말 두 달 간 200여명이 모아온 저금통을 한 모금기관에 통째로 보냈는데 모두 78만여원을 수령했다는 영수증을 받았다. 기부의 투명성을 위해 모금기관에서 받은 영수증을 복사해 가정에 보내고 ‘착한 어린이 상장’도 준다.

월드비전이 주최하는 기아체험 캠페인에는 매년 10만여명이 참여해 밤을 지새며 배고픈 고통을 체험하고 모금에 참여한다. “행사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세상이 따뜻하게 느껴지고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지는 체험’이라 얘기하곤 한다”고 전하는 송미숙(宋美淑)간사는 “신세대에게 기부는 적선이 아닌 참여의 개념에 가까운 듯하다”고 말했다. 이웃과의 나눔을 권리이자 책임으로 느끼는 듯하다는 얘기다.

영국에서 오래 살다온 번역가 권은정(權恩淨)씨는 “영국에서는 아이들이 기부를 배우며 자라기 때문에 커서도 기부를 당연시한다”고 말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가진 자들의 사회적 의무)를 당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큰 뒷받침이 된다는 것이다.

안경환교수는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교육은 지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사랑과 재물은 남과 나누는 것임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세상이 키우는 것’이며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이 어른들 몫’이라는 얘기다.

▼'나눔의 가게' 대학로에 첫 현판▼

20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동숭아트센터에 첫 ‘나눔의 가게’ 현판이 달렸다.

나눔의 가게란 매출의 1%에 해당하는 현금 또는 현물을 이웃에게 기증하는 가게. 동숭아트센터는 연간 3600장의 공연티켓(2200만원 상당)을 기부하기로 약정했다.

동숭아트센터 김옥랑(金玉浪) 대표는 “평소 문화란 나눔과 동의어라 생각해왔다”며 “이들 티켓이 장애인이나 외국인 근로자 등 문화적 차별 속에 살아가는 그늘진 이웃에게 전달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92년부터 문화예술인 양성을 위한 옥랑문화재단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이날에는 장애인 30여명이 극장에서 기부한 티켓으로 ‘공동경비구역 JSA’를 관람했다. 휠체어를 타고 영화를 보러온 이현준(李弦俊)씨는 “장애인들은 경제적 이유뿐만 아니라 편의시설 부족 때문에도 문화생활을 누리기 어렵다”며 “장애인들의 문화 향유권 확산을 위해 애써달라”고 부탁했다. 김정임(金柾任) 나눔의 가게 운영위원장은 “요즘 재단에는 ‘가게가 작은데 이런 소액도 받아주느냐’는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며 “액수가 아니라 수입 일부라도 남을 위해 쓰겠다는 마음이 중요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순간의 연민과 동정으로 돈을 내고 잊어버리는 기부가 아니라 삶의 터전에서 1% 나눔을 실천하는 일상적 기부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아름다운 재단에서는 매출 1%를 기부약정하는 업체에 ‘나눔의 가게’ 현판을 부착해주고 홈페이지를 통해 홍보해준다. 기금은 기부자들로 구성된 운영위가 운영할 예정. 나눔의 가게 현판은 전각가 김태완(金泰完)씨가 제작해 재단에 기부했다.

▼아름다운 게시판▼

▽게시판〓‘나눔’에 관한 미담을 찾습니다.

나눔은 또 다른 나눔을 낳습니다. ‘왼손이 모르게’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사는 분들의 사례를 알려주십시오. 나눔의 방식은 돈이건, 시간이건, 또 다른 형태건 좋습니다. 알려주신 소식들은 아름다운재단 홈페이지에 반영하겠습니다. 제보는 인터넷 www.beautifulfund.org, 전화 02―730―1235로 주십시오.

sya@donga.com

*학생들이 모은 사람의 빵 나누기 모금액(99년)*

참여 숫자(개교)

총모금액(원)

평균모금액(원)

유치원

631

1억5026만5513

23만8139

초등학교

3407

8억6327만3727

25만3382

중학교

1441

2억6122만9990

18만1284

고등학교

778

1억7512만3173

22만5094

기타

29

409만1535

14만1087

6286

14억5398만3938

23만1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