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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준의 재팬무비]새로움 보단 전통이 우선

입력 | 2000-09-22 14:39:00

의 한 장면


지난주 일본 극장가 흥행 차트를 살펴보았습니다. 흥미로운 작품이 1위에 올랐더군요. 라는 영화입니다.

'나가사키(長岐)'는 도시 이름입니다. 일본과 외국을 이어줬던 항구 도시로, 덕분에 중국 상하이처럼 이국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습니다. 지금은 관광 도시로 이름이 높고, '나가사키는 오늘도 비가 왔다'라는 노래로도 유명합니다.

'부라부라부시'는 번역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부라부라(ぶらぶら)'는 빈둥대는 모양을 가리키는 말, '후시(節)'는 노래 가락을 뜻하는 단어입니다('부라부라' 뒤에 붙으면 '부시'로 발음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빈둥가[歌]'쯤으로 번역하면 될까요? 어색하기 짝이 없군요.

영화의 주인공 사다 아이하치는 샤미센(三味線·기타를 닮은 일본 전통악기) 연주 실력과 노래 실력이 탁월한 기생으로, 실존했던 인물이라고 합니다. 근대 일본의 '황진이' 쯤 될 것 같습니다. 아이하치가 고가 주지로라는 연인과 함께 잊혀진 노랫가락을 찾아 나서는 게 이 영화의 기둥 줄거리이고, 두 사람이 여행에서 찾아내는 노랫가락이 바로 '나가사키 부라부라부시'입니다. 실제로 이 노래는 아이하치의 연주로 레코드되어 남아 있습니다.

는 '일본의 '라고 불러도 괜찮을 성싶군요. 내용은 많이 다르지만 옛것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있고, 감독의 나이가 많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를 연출한 후카마치 사치오 감독의 나이가 65살이거든요.

또 흥행에서 성공했다는 점도 닮았습니다. 가 1백만 명이나 되는 관객을 모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랐는데, 일본에서도 이 영화의 성공이 많을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모양입니다. 남자 주인공 고가 주지로를 연기한 와타루 데츠야라는 배우가 개봉관에서 주최한 관객과의 만남에서 "섹스도 없는 이런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래도 나는 역시 섹스가 있는 편이 좋아요" 라고 농담을 했을 정도랍니다(남자 배우가 이렇게 말하니 여주인공인 요시나가 사유리도 "그렇죠? 앞으로는 베드신이 많은 영화를 해야겠어요" 라고 맞장구쳤답니다).

신세대의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시대이긴 하지만, 나 의 흥행 성공은 우리나 일본 사람들이 아직도 옛것을 좋아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특히 일본 사람들은 더 그렇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정말 전통을 중요시합니다. 프로야구에서도 전통이 제일 깊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한신 타이거스가 제일 인기 있고, 일본 전통 씨름인 스모의 인기도 대단합니다. 그뿐입니까? 전통극인 가부키(歌舞技)나 노(能)가 상연되는 극장은 관객들로 가득합니다. 전통 문화가 찬밥 대우받는 우리 나라와는 대조적이지요. 그래서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자부심 또한 대단합니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 보면, 전통 문화를 소재로 삼아서 히트한 일본 영화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출세작 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일본 씨름 '스모(相撲)'를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옛날 봉건 사회에서 영주가 천왕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자 가신들이 복수를 감행하는 (忠臣藏) 이야기는, 때만 되면 영화화되고 또 그때마다 흥행에 성공합니다.

1938년 발표된 마키노 마사히로 감독의 걸작 (忠臣藏 天の券·地の券)에서부터 1958년 (忠臣藏), 1994년 작품 (忠臣藏外傳 四谷怪談)에 이르기까지 열 편도 넘습니다. 우리 나라의 과 비슷한 셈입니다.

또한 수많은 일본 감독들이 전통극 '노(能)'의 기법을 영화에 응용하고 있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대표적인 감독이 바로 구로사와 아키라 아닙니까. 그뿐이 아닙니다.

고지라와 울트라맨을 탄생시켰던 일본 특수촬영 영화의 거장 츠부라야 에이지 감독(1901-1970)이 내년으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해서 고향인 스가카와 시는 현재 '울트라맨' 열기로 가득하다고 합니다. 특수촬영 영화제나 츠부라야 영화상 제정, 동상 건립 등은 기본. 선택 옵션으로 시내 모든 지상 변전기에 울트라맨과 괴수들 그림을 페인팅하고 있다고 합니다. 옛날 영화들에 대한 자료 하나 변변히 보관하지 못한 우리로서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도 씨름, 판소리, 우리 영화, 우리 문화를 사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