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민운동가인 최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의 기아자동차와 삼성SDI 사외이사 활동 사실이 밝혀지면서 시민운동가의 사외이사 활동이 바람직한가를 놓고 말들이 무성하다. 시민운동가의 사외이사 참여가 도덕적으로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으며 오히려 기업경영에 적극 참여해 감시 견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긍정론이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 경영의 들러리로 이용될 수 있고 시민운동의 순수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부정론도 있다.》
[찬성]
▼"기업경영 감시-견제역할 바람직"▼
최근 시민운동가의 사외이사 참여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은 것 같다. 특히 평소 시민단체 활동을 고깝게 보는 사람들일수록 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 같다. 이 사회에서 시민단체의 역할이 커질수록 시민단체가 어떤 견제장치 없이 제 마음대로의 기준으로 온갖 사회현상에 간섭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고 그들의 시민단체에 대한 비판의 눈길은 따가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시민단체들 스스로 항상 자신의 주장과 행동을 되돌아보고 주위를 깨끗이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운동가의 사외이사 참여 문제는 사외이사의 역할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있는 사람이라면 참여 그 자체를 놓고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업의 이사라는 직책은 기업이 잘 될 수 있도록 기업운영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해 조언하는 사람들이다. 사외이사도 이사의 한 사람으로서 그런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사외이사는 그런 역할과 동시에 기업의 경영을 감시하는 역할도 하는 특수한 신분인 것이다. 기업이 왕왕 스스로 혹은 기업주들의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편법적이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일을 하게 되는데, 이 경우 기업주의 측근들로만 구성된 이사진으로는 그런 행위를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역할을 하기 위해 적절한 사외이사는 어떤 사람들일까. 분명히 지금처럼 기업주와 친분관계가 있는 변호사 교수 공인회계사 퇴직관료들로만 구성돼서는 곤란할 것이다. 잘못된 행위를 보면 과감히 그것을 지적할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할 것이다. 소액주주 대표자, 노조 대표자, 시민단체 대표자들이 이러한 부류에 속하는 것이다.
시민단체 대표와 관련해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기업의 이익과 그들이 대표하는 시민단체의 목표가 상충할 때 과연 그들이 바른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그들은 바른 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민단체 대표는 그들이 속한 시민단체의 견제를 받을 뿐 아니라 사회의 견제도 받기 때문이다. 그들이 비도덕적으로 행동했을 경우 그것이 사후에 밝혀진다면 그것은 바로 그 자신의 파멸로 직행하는 것이다. 반면에 개인 자격으로 사외이사에 참여한 사람은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고 항상 기업과 결탁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따라서 시민운동가가 사외이사로 참여하는 자체가 문제가 아니고 얼마나 투명하게 참여하는가가 관건이 되는 것이다. 이 경우 그는 시민단체를 대표해서 참여하고 있기에 그가 받는 보수의 상당부분은 시민단체의 발전을 위해 기부해야 하고 정기적으로 활동 내용이 소속 단체에 의해 모니터돼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말썽의 소지가 있는 스톡옵션같은 것은 받지 않는 것이 떳떳할 것이다.
나성린(한양대교수·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장)
[반대]
▼"보수받으며 공정비판할 수 있나?"▼
시민없는 시민운동 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우리 사회에서 시민단체가 공익을 개념화하는 대안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전문성보다는 도덕성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도덕성이 자주 여론의 시험대에 오르고 있는 것은 우려할만한 일로서, 이번에 불거져 나온 환경운동연합 최열사무총장의 특정기업 사외이사 활동도 그 가운데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시민운동가는 왜 사외이사직을 맡아서는 안되는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시민운동가로부터 기대되는 역할, 즉 우리가 시민운동가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역할 기대와 걸맞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시민운동가로부터 기대하는 것은 공공이익의 수호자 로 헌신하며 남아 달라는 것이지, 특정이익의 수호자 로 활동하라는 것은 아니다. 특정기업 사외이사로서의 임무는 합리적인 이윤추구 활동을 하도록 기업경영을 감시하는데 있다.
문제는 기업의 이윤추구 활동에 대한 경영감시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공공이익과 특정이익이 충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공공이익의 수호자가 특정이익의 수호자를 겸직하는 것은 약간 과장하면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특정기업의 고문을 맡거나, 판사가 특정 피고의 변호사직을 맡고 있는 것에 비견할 수 있다. 특정기업이 이윤추구 과정에서 공익에 위배되는 행태를 보일 경우, 문제의 기업으로부터 상당한 보수를 받고 있는 입장에서, 어떻게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여론에 호소할 수 있겠는가.
물론 해당 시민단체에서는 의도가 순수했고 받은 돈도 의미있게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의도의 순수성이란 상대적인 것이다. 시민운동가를 사외이사로 영입한 기업의 의도는 무엇이겠는가. 재무나 경영 분야에서 전문성이 부족한 시민운동가에게 사외이사직을 위촉한 이유는 시민운동가의 위상이 대외 이미지 관리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의도 만을 가지고 도덕성을 담보받을 수는 없으며, 그 '행위의 결과'에 의해서도 도덕성이 가늠되어야 한다. 시민운동가가 사외이사직을 맡으면서 특정이익을 공공이익보다 앞세우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공공이익이 특정이익에 의하여 훼손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면, 그 도덕성은 흠집이 난 셈이다.
사살 이 문제는 이미 시민단체가 특정인의 공직자 자질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제기한 사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같은 문제가 자신들에게 돌아가자 의도의 순수성만으로 방어하려는 것은 대단히 옹색한 태도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 이라는 자기중심적 사고의 한 단면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남에게 들이대는 잣대를 자신에게 엄격하게 적용할 때 도덕성이 담보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민단체 스스로 "오이 밭에서 신발끈을 고쳐매는 일을 삼가라"고 외쳤던 사실을 상기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박효종(서울대교수·국민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