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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책]패션의 역사 '멋내기' 위해선 모든걸 버렸다

입력 | 2000-09-22 18:33:00


카를 5세가 단장으로 마부의 등짝을 후려쳤다. 말귀를 어지간히 안 들어먹자 부아를 참을 수 없었다. 그런데 눈앞이 번쩍하더니 귓뺨이 얼얼했다. 마부의 투박한 손바닥이 어른거렸다. 카를 5세의 입성이 하도 조촐했던 탓에 마부가 신성로마황제를 알아보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애꿎은 그의 목이 달아난 건 물론이다.

옷과 목숨을 바꾸었던 사람들이 또 있었다. 루터 종교개혁이 위세를 떨칠 무렵, 독일옷을 입고 알프스를 넘다가는 목숨이 열이라도 부지하기 어려웠다. 나그네나 순례자가 깜빡 옷을 안 갈아입은 죄로 몰매 맞아 숨진 사례도 실제 있었다. 또 사시사철 얇고 가벼운 옷을 고집하다가 폐결핵에 걸려서 피를 토하거나, 절구허리를 장구허리인양 졸여 매다가 만성 장폐색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진정한 멋쟁이들은 언제고 기꺼이 그 고통을 감내했고 하늘이 핑글 돌 때까지 허리띠를 질끈 동여맸다.

옷이 체온과 부끄럼을 지켜주는 실용과 문화의 양면 가치를 충족시킨다면, 패션은 주로 욕망의 역사를 반영한다. 창조주의 모습을 판박이한 인체의 아름다움을 몸에 걸쳐지는 모든 것을 통해서 표현하려는 욕망은 시대와 제도에 반목하는 일이 잦았다.

20세기 초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스커트 길이를 땅바닥에서 15cm까지로 제한하거나 짧은 소매 상의에다 범칙을 매긴 건 우리에게도 새삼스럽지 않다. 웃옷의 목선을 젖과 꿀이 흐르는 골짝 깊이 파내려 가려는 16세기 여성들은 속 비치는 천을 결단코 옷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교황 인노켄티우스의 옹고집과 한 판 양보 없는 국경 전쟁을 벌려야 했다. 또 머리카락, 가발, 수염, 신발코의 길이까지 꼬치꼬치 따지는 오만가지 금지 규정들은 고래뼈 코르셋보다 더욱 갑갑하게 멋쟁이들을 옥죄었다.

1795년 자코뱅이 몰락하자 그 동안 시시콜콜 옷차림 간섭에 넌더리가 났던 프랑스 여자들은 ‘홀딱 패션’을 만들어낸다. 멋쟁이들의 멋진 반격이었다. 또 가장무도회에서 에덴 동산의 이브를 가장하거나 희극 ‘파리스 심판’에서 비너스 역을 핑계삼아 알몸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남자들이 단두대 놀음에 골몰하는 동안 여자들은 나름대로의 혁명에 전력했던 것이다.

패션에 대한 금지규정과 규제들이 늘 불합리한 건 아니었다. 30년 전쟁 즈음해서 백전의 용맹을 자랑하려고 창칼에 찢긴 누더기를 그냥 입던 것이 급기야 젊은이들 가운데 멀쩡한 새 옷을 갈기갈기 찢어 입는 유행으로 번진 건 그렇다 쳐도, 제깐에 씩씩한 남성답게 보이려고 너나없이 사타구니에 방망이 주머니와 알주머니 둘을 알뜰히 매달고 다닌 건 아무래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부풀리기 경쟁까지 붙어서 헐렁한 알주머니에다 지갑이나 손수건 따위를 보관하거나, 심심풀이 오렌지를 넣어두었다가 맘에 드는 귀부인에게 까주기도 했다고 한다. 허리춤에서 빨간 것을 불쑥 꺼낼 때 놀라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마 칼이나 날계란같은 건 안 넣었을 것이다.

막스 폰 뵌이 지은 ‘패션의 역사’는 원래 일곱 권 짜리 전집이다. 인문학 고전답게 역사의 솔기를 한 땀 한 땀 누비면서 근사한 우주를 한 벌 지었다. 이 책의 편저를 맡아서 두 권으로 요약한 잉그리트 로쉐크는 커다란 장롱 안을 뒤져서 입기 좋은 옷들을 골랐다. “옷은 새 옷, 님은 옛 님”이라더니 이번에 나온 ‘패션의 역사’는 80여년 전 옛 저자의 손길을 무리 없이 전한다. 독자들은 일년 365벌의 옷을 갖추고 살았다는 베네치아 멋쟁이처럼 철 따라 입맛 따라 옷을 갈아입으면 그만이다. 상하의 두 벌 정장. 한 벌 가격은 1만8000원. 각 410쪽 내외. 이재원 천미수 옮김.

노성두(미술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