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위가 발표한 ‘2단계 금융구조조정 추진 계획(블루프린트)’은 과연 위기 상황으로까지 악화된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을까. 해답은 정부가 예정대로 실천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발표만 하고 실행이 없다면 백약이 무효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금융 불안의 해소에 있다. 그동안 금기시해 왔던 일부 ‘부실 대기업’에 대한 처리방안을 거론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이다. 공적자금 추가 조성 규모를 당초 예상보다 많은 40조원으로 늘린 것도 2차 구조조정의 신뢰성을 높게 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시행 방안이 아직 마련되지 않아 일정대로 이뤄질지가 의문이다. 구조조정에 필수적인 인력과 조직의 감축(다운사이징) 과정에서 예상되는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에 대한 복안이 제시되지 않았다.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국회에서 조세감면법 기업구조조정투자회사(CRV)법 금융지주회사법 증권거래법 등 관계법 처리가 늦어질 가능성도 복병이다.
▽2차 구조조정 계획 왜 나왔나〓‘신속 충분 투명’한 구조조정을 통해 금융 경제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취지다. 최근 들어 유가 폭등, 반도체값 하락, 대우차 매각 지연 등 외생 변수가 악화되고 있어 구조조정에 대한 신뢰성마저 떨어져 금융 불안이 금융 경제위기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았다. 지난해 7월 미봉책으로 넘겼던 대우그룹 문제가 포드의 대우차 인수 포기로 원점으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제기되고, 올 들어 몇차례 금융시장을 충격에 빠뜨렸던 현대그룹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정부의 구조조정에 대한 믿음을 잃게 만들었다.
1차 구조조정 때는 부실 금융기관과 부실기업의 ‘정리’에 중점이 두어졌다면, 2차 구조조정은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금융기관의 기능 복원에 초점이 맞춰진 것도 특징이다. 은행 기능을 회복시키지 않고선 자금 경색→기업 부도→부실채권 증가라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위기 극복할 수 있을까〓일부 대기업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또는 청산에 들어갈 경우 금융시장은 단기적으로 충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시한폭탄’을 제거한다는 점에서 중장기적으로는 호재다.
이런 점에서 부실 징후 기업을 투명하게 선정하고 필요할 경우 퇴출시킬 수 있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다. 우선 자금 지원이 보장되는 ‘여신거래특별약관’이 적용되는 기업의 선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거의 부도유예협약이나 현재의 워크아웃처럼 여신거래특별약관도 정부나 채권단에 의해 편법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여신거래특별약관 적용 대상기업 선정은 주채권은행에 의해 비공개적으로 이뤄진다. 한계기업에 여신거래특별약관 적용이 남용될 경우 오히려 시장 불신을 가중시킬 우려도 없지 않다.
은행이 제대로 부실기업을 판정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추가 부실에 대해서는 공적자금 투입이 보장돼 있으나 이럴 경우 경영진의 책임 문제가 따른다. 은행의 건전성이나 신용등급 하락 등을 감수하면서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정부가 1차 시한으로 정한 10월까지가 가장 중요한 시기다. 그때까지 약속한 것 중 일부라도 제대로 추진되지 못한다면 금융 불안은 위기 상황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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