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짐 토페 선수는 장은경보다 휠씬 긴 1년간 금메달리스트의 영예를 누렸다.
짐 토페는 1912년 스톡홀름올림픽 10종경기와 5종경기에서 금메달을 땄다. 짐 토페는 이후 미식축구와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도 맹활약했다.
짐 토페가 스톡홀름올림픽에서 2관왕이 된 지 1년 뒤,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발행되는 ‘텔리그림’이라는 잡지의 체육담당 기자가 ‘짐 토페는 올림픽에 출전하기 전인 1910년에 프로야구 선수였다’고 폭로했다.
짐 토페는 프로야구 선수였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보도는 사실이지만 나는 야구가 좋아서 노스 가디나(North Cardina)팀에서 야구를 한 것이지 돈(연봉 60달러) 때문에 하지 않았다”고 시인했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짐 토페가 돈을 벌 목적으로 야구를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프로는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다’는 규정상 어쩔 수 없이 금메달을 반환케 하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명단에서도 토페의 이름을 삭제했다.
지금도 1912년 스톡홀름올림픽 10종경기 금메달리스트는 당시 2위였던 스웨덴의 비스렌더, 5종경기 금메달리스트는 노르웨이의 페르디난드 선수로 남아 있다.
짐 토페가 금메달을 반환하자 미국 언론에서는 20여년 동안 꾸준히 명예회복을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까지 나서 당시 킬러닌 IOC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으나 허사로 돌아갔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토페가 죽은 지 29년 후인 1982년, IOC는 짐 토페의 아들 차도르 토페의 진정을 받아들여 올림픽 금메달을 돌려주었다.
캐나다의 벤 존슨 선수는 시간상으로 장은경과 짐 토페 선수의 중간쯤인 67시간 동안 금메달리스트의 영광을 누렸다.
1988년 9월24일 서울올림픽의 하이라이트인 남자 육상 100m 결승전이 열렸다. 캐나다의 벤 존슨은 숙적인 미국의 칼 루이스를 제치고 9초79의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벤 존슨은 두 차례에 걸친 도핑테스트에서 근육강화제인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는 판정을 받고 사흘(정확하게 67시간) 뒤 도망치듯 한국을 떠났다.
1988년 서울올림픽 남자 육상 100m 금메달은 2위로 들어온 미국의 칼 루이스(9초93) 선수가 차지했다. 칼 루이스는 이 금메달을 포함해서 모두9개의 금메달을 획득해 역시 미국의 육상 선수인 레이 어리(10개) 선수에 이어 역대 최다 금메달 2위에 올라 있다.
그 후 재기를 노리던 벤 존슨은 93년 또다시 약물복용이 적발돼 세계육상계에서 영구 제명당했다.
기영노/스포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