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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담론]에드문트 후설 "유럽의 위기"

입력 | 2000-09-25 18:55:00

에드문트 후설


“‘유럽의 위기’는 길을 잘못 들어선 합리주의에 그 뿌리가 있다.”

현상학의 창시자인 독일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은 이성적 합리주의와 자연과학적 객관주의에서 유럽 위기의 근원을 찾았다. 후설이 보기에 그 위기는 바로 유럽 학문의 위기였고 곧 인간성의 위기이기도 했다. 자연과학적 객관성을 표방하며 실질적인 ‘생활세계(Lebenswelt)’, 즉 인간의 구체적 삶이 실현되는 세계와 인간의 정서적 내면성을 외면한 채 계량화된 가상세계에 매몰돼 있는 것이 당시 유럽 위기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후설이 ‘위기론’을 제창한 1930년대는 바로 유럽이 2차대전의 비극을 준비하던 시기였고, 이 때 후설은 ‘유럽의 학문과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통해 ‘현상학’을 탄생시켰다.

1, 2차대전의 참혹함을 경험한 유럽 지식인들에게 인간이 만들어 낸 당시 현실의 고통은 바로 실존주의를 탄생시키는 모태였다. 나치에 의해 대학에서 축출됐던 독일의 실존주의자 카를 야스퍼스에게, 기계와 물질과 사회적 메커니즘에 매몰된 현대인이 자신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만드는 것은 바로 탄생, 죽음, 경쟁, 죄 등 고통스런 ‘한계상황’의 직면이었다. 이 한계상황의 경험을 통해 인간은 실존을 넘어 신에게로 초월한다. 한때 나치에 동조하는 오점을 남기기도 했던 마르틴 하이데거의 경우,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은 자신의 현실을 ‘불안’해 하면 할수록 자신의 타락한 현실을 반성하고 이성과 양심에 귀기울이며 참된 자기, 즉 실존으로 돌아갈 수 있다.

◇실존주위 탄생 모태

석가모니 역시 고통의 인식으로부터 깨달음의 길은 시작됨을 가르쳤다. 현실이 번뇌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음을 절실하게 느끼면서 현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깨달음이라는 이상향에 도달하기 위한 치열한 수행의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기독교 같은 일신교에 귀의하든 불교 같은 자력종교의 길에 들어서든, 그것은 일상적 삶의 위기를 절감한 인간의 선택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서 근본적 혁명이 가능한 최적의 시기는, 노동자들이 ‘쇠사슬’ 외에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위기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다. ‘정말’ 그런 상황이라면 반드시 혁명은 일어난다.

◇경제-정치판 혁신할수도

위기는 변신의 기회다. 요왕과 순왕의 태평성대 이래로, 고대 그리스의 신화시대 이래로, 특히 19세기 근대화의 물결 이래로 우리에게 위기가 없었던 시기는 거의 없다. 경제 정치 학교 가치관 문학 생태계 종교 남성 인문학 재벌 가족 …. 이런 흔한 단어 뒤에 ‘위기’란 낱말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 사회가 얼마만큼 ‘위기’에 익숙한지 알 수 있다.

경제의 위기는 말 안 듣는 노동자를 내쫓을 수 있는 기회이고, 골치 아픈 기업에서 손을 털 수 있는 기회일 뿐 아니라, 부실한 경제구조를 탄탄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정치의 위기는 총체적 위기의 책임을 떠넘기며 정권을 빼앗아 올 수 있는 기회일 뿐 아니라, 부패와 패거리 의식에 찌든 정치판을 혁신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학교의 위기는 교육관료와 재단과 교직자와 동문간의 세력 판도를 바꿔놓을 수 있는 기회일 뿐 아니라, 학교를 진정한 교육과 학문연구의 장으로 만들 기회이기도 하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 이 기회가 너무 자주 오고, 또 이를 쉽게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위기가 클수록 기회도 크다. 그것은 근본적 변신의 기회일 수도 있고, 이 위기를 근근히 넘긴 후 또 다음 위기를 맞을 기회이기도 하다.

khc@donga.com